國格 높이기
수년 전 출장길에 부여박물관을 찾은 적이 있다. 새로 지은 박물관의 모습도 볼 겸 특히 젊은 날 감동을 준 산경봉황문전(山景鳳凰紋塼)을 다시금 완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경치무늬벽돌’이란 순화된 이름을 다시 태어난 이 전은 보물343호로 사방 한자 쯤 되는데, 기암괴석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고 뒤로는 온후한 삼봉의 산을 중심으로 산이 있으며, 가운데 절벽 뒤에는 선묘된 기와집이 한 채 있고, 오른쪽 절벽 사이에는 승려나 도사인 듯한 인물이 건물을 향해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백제인들의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보는듯한 이 전돌에 대하여 임영주 문화재전문위원은 ‘이 전처럼 한국적인 산수의 온아한 풍경을 반추상적인 표현으로 묘사한 창조성은 한국문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멋과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우리는 예부터 구조재로 혹은 장식재로 전을 사용해왔고, 대부분 그 용도에 따라 걸 맞는 장식문양을 새겨 제작하였다. 글자, 십장생, 동물, 식물, 귀면, 인물 등 그 소재도 다양한데, 구름무늬 하나만 하여도 꽃구름, 완자구름, 쌍꼬리여의 구름, 덩굴구름 무늬 등 다양하다. 구름은 성스러움과 중용을 뜻하며, 유교에서는 입신양명, 초월을 의미하고 불교로 가면 번뇌와 무상이 된다. 이와 같이 ‘문양의 실체는 그냥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다. 아름다움 이전에 그 문양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단순한 문양이라도 그 작은 문양 하나 속에 우주의 섭리가 깃들여 있고, 반면 아무리 현란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고 있다할지라도 그저 장식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산경치무늬벽돌 외에도 3국시대부터 조선시대 경복궁 자경전의 화초담과 굴뚝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아름다운 전을 수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 새로 지은 부여박물관의 앞마당은 국적불명의 벽돌들이 의미 없이 깔려있었다.
G-20 정상회의 유치와 함께 한국은 ‘국격 높이기’가 화두이다. 건축계도 건축 도시 가로의 ‘국격 높이기 디자인’을 위한 포럼을 열었다. 우리는 각 지자체마다 한정기간이 지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치워 매스컴의 질타를 받곤 한다. 이제 선조들의 문양을 원용하여 포도를 만들자. 인천국제공항에는 비천상을, 산악도시에는 수렵도를, 경복궁 앞에는 화초담문양을 쓴다면 아름답기도 하려니와, 외국인에게도 신선하고 강한 이미지를 심어줄 것이다. 국격을 높이는 것은 특별예산이 아닌 이렇게 조용히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