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준비 속 독주하는 국민안전처
지난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소방시설 내진설계를 두고 건축물 설계와 시공, 감리 등 건축사와 관계 기술자들의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 소방시설 내진설계는 지난 2011년 8월 4일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2012년 2월 5일부터 법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세부 기준 부재로 시행 자체가 장기간 미뤄져 오다 지난해 11월 30일 안전처가 소방시설 내진설계의 적용범위와 설치에 대한 세부기준을 담은 관련 고시를 제정했다. 올해 1월 25일 본격 시행에 돌입한 내진설계 규정에 따라 앞으로 신축되는 특정 건축물 소방시설에는 반드시 내진설계를 반영해야 하고 소방시설에 내진 성능을 확보해야 하는 대상 건축물은 구조안전확인을 필요로 하는 건축물 등으로 옥내소화전과 스프링클러설비, 물분무 등 소화설비가 들어가는 건축물에는 해당부분에 내진설계가 반영돼야 한다. 내진제품에 대한 인증 등 체계가 구체화되지 않은 국내의 현실 속에 설계시장은 극소수 업체들이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이고 반영된 내진설계와 관련, 내진성능 제품의 현장 적용과 검증을 담당할 시공 현장과 감리의 역할이 부담되는 상황에서 내진설계를 둘러싼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소방시설 내진설계에 대한 기술과 제품의 미비는 사회비용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국민안전처가 최초 입법 당시 작성한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설계비의 경우 50만 원정도의 상승을 예측했지만 시장에서는 500만원까지 치솟았다. 희소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시공 적용가능제품 역시 우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제품들을 우선 적용한다는 방침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지극히 좁아 시장에서의 가격 상승은 불보듯 뻔하다. 또한 내진규제로 인한 추가비용이 직접적인 소방 설비에 국한되어 있는 것도 시장을 반영치 못했다. 변경되는 소방설비가 차지하거나 다른 설비배관과의 간섭 등을 피하기 위해 소요되는 천장 속 공간의 확대는 건축물의 규모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비용보다 훨씬 많은 간접비용을 발생시킨다. 결국 정량적 분석이 미흡했던 규제영향분석서가 현재의 혼란에 일조한 셈이다.
국민안전처는 기술자에 대한 내진설계 관련 특별교육과 설치예외조건의 마련 등을 통해 혼선 최소화에 집중하겠다고 한다. 행정의 일관성 유지도 좋지만 입법과정에서의 실수를 인정하고 시장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비용을 재고, 시행을 유보하고 무리 없이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 시장여건을 조속하게 조성한 후 법령을 시행하는 것이 국민의 안전을 위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