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짓기
고등학교시절 대입 원서를 작성하며, 막연히 재미있어 보이고, 나의 성격과도 맞을 것 같아서 건축공학과에 지원을 했다. 나름 알아보고, 고민하고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며 선택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신중함은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사무실을 차리고 설계를 하고, 집이 지어지는 것들을 보며 이렇게 힘든 길을 가게 되리란 걸 19살 소녀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처럼 덧없는 것이 없다지만, 만약 40대가 되어 본 지금의 모습을 그때 알았다면 다른 길을 선택했었을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종종스쳐 지나간다.
‘행복한 집짓기’
내가 바라는 첫 번째 기준이며, 마지막까지 놓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는 부분이다. 설계를 하며, 첫째 건축주와 그 공간을 함께 할 이들에게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 주길 기도하며, 더 나아가 다음 세대에도 행복한 공간이길 기도한다. 설계를 시작하며,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꿈들을 그려 나갈 때면 나름 즐겁기도 하고, 무엇인가 고민이 해결 될 때면 기쁨이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항상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막상 공사가 시작되면 예상치 못했던 힘들고 복잡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현장에서 시공자와 현실적인 부분들을 맞춰가며 해결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기고, 때로는 건축주를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들이 생긴다.
또한 주변 민원인들의 요구를 조율해 나가야 함은 항상 어려운 숙제다. 예상하기 어려운 일들도 더 많이 발생한다.
보편적인 민원인들의 요구는 협의하고 맞춰 가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지나친 요구들이나 자신들의 기준에 따른 원망들을 들을 때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주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거나 속상한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 건축을 하며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에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사람들은 점점 서로 누군가를 배려하고, 이해하려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상황만을 바라봐 설계자의 입장에서 타협점을 찾는 일들이 쉽지 않다.
몇 해 이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요즘엔 설계를 한다는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누구나 비슷한 통과의례가 아닐까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그래도 힘든 마음이 드는 날이면 우울해지곤 한다. 내 깜냥이 건축을 하기엔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현장에 자주 발걸음을 하는 이유는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욕심이기도 하다. 오늘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결과들을 만들어 내길 기도하고, 나보다 더 긴 시간 존치하게 될 건물들이 그 공간을 누리게 될 이들에게 행복한 공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