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 김정환

2016-06-16     함성호 시인

추억이 제의다. 맥락도 없이 불쑥불쑥
감동의 뼈대만 드러나고 그렇게만 그것이
비로소 과거고 비로소 과거가 안심이다.
당신은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몰라……
그랬던 여자가 있었구나. 이것도 그녀가
사준 음악이다. 먼 옛날 추억이 제의를
낳았는지도. 제의가 아무리 피비려야
하는 것이었대도.

 

-『내 몸에 내려앉은 지명』
김정환 시집 중에서 / 문학동네 시인선 / 2016
제목은「야구」인데 내용은 야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시인에게 야구는 그저 제의처럼 과거의 유물로만 남아있다. 그 유물은 한 여자가 해 준 선물도 그렇게 여겨지게 한다.
개인적인 일로 치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선물은 고스란히 사소한 역사가 되고 그렇기에 유물이 된다. 거기에는 그 선물을 했던 사람의 마음이 있고, 과거가 되어야만 안심 할 수 있는 어떤 (위험스러운) 제의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는 것은 어쩌면 유물을 담고 있는 무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