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
- 이능표
2016-06-01 함성호
소나무 숲 건너서 아침이 오고
바람은 며칠째 불지 않는다.
잣나무 자리에 측백 나무를 심고
측백나무 자리에 잣나무를 묻는다.
자리 바뀐 나무들을 바라보며
삽자루 끌며 마당을 서성인다.
구름 한 점 없는
유월도 한낮인데
큰일났다, 그리운 것이 없다.
-『슬픈 암살』이능표 시집 중에서/ 북인 / 2015
나무를 옮겨 심는 것은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래 자라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한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라하더라도 살펴야 할 것이 많다. 측백나무와 잣나무는 둘 다 구과목에 속하지만 생김새는 아주 다르다. 측백나무는 무성하게 자라고 잣나무는 수간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대비를 시인은 어떻게 해석했던 것일까? 문제는 나무에 있지 않다. 나무를 옮겨 심고 보니까, 그제서야 그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