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꽃

- 송찬호

2016-05-01     함성호 시인

박카스 빈 병은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신다가 버려진 슬리퍼 한 짝도 냉이꽃을 사랑하였다
금연으로 버림받은 담배 파이프도
그 낭만적 사랑을 냉이꽃 앞에 고백하였다
회색 늑대는 냉이꽃이 좋아 개종을 하였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긴 울음을 남기고 삼나무 숲으로 돌아갔다

나는 냉이꽃이 내게 사 오라고 한 빗과
손거울을 아직 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에서 떠나온 날짜를 세어본다
나는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분홍 나막신』송찬호 시집 중에서
/문학과 지성사/ 2016

이 시에서 냉이꽃은 자연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그 무위(無爲) 앞에서 박카스 병과 슬리퍼와 담배 파이프, 그리고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늑대가 고백을 했지만 아마도 모두 거절 당한 듯하다. 위(爲)로 무위(無爲)할 수는 없지만 무위(無爲)로 위(爲)할 수는 있다고 노자는 말한다. 건축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자연은 건축에게 빗과 손거울을 사오라고 했다. 건축은 시장에 나가서 그것을 사긴했지만 자연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돌아 갈 수 있는 길이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