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防日) 극일(克日) 초일(超日)
필자의 초등학교시절 교실 뒷벽에는 반공방일(反共防日)의 구호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해방 10년 전후이니 일본에 대한 경계는 공산당과 동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984년 일본의 교과서 왜곡파동이 일자, 사라졌던 방일은 극일(克日)로 구호가 바뀌었다.
극일은 스포츠에서 찾아왔다. 박세리, 최경주에 이어 신지애까지 골프에서 극일을 하더니, 아직은 멀다던 야구에서 승리하고, 금번 동계올림픽에서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이 아사다를 까마득히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산업분야에서는 조선업이 일찌감치 일본을 제치고 세계최고의 수주실적을 올리고 있는가 하면, TV 세탁기 등 가전제품과 핸드폰, 메모리 칩 등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이건회 삼성회장은 이에 대해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앞섰다.’며, 우위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제 일본보다 우위에 선 것은 이러한 하드웨어뿐이 아니다. 100년 전 한일 강제 합병으로 일본의 행정조직과 법령을 강제로 이식 당했던 한국이, 올해에는 ‘한국형 전자정부’를 일본에 수출하기로 한 일 간에 양해각서를 이 달 내 체결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소프트웨어 분야도 한국이 하나 둘 앞서고 있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민중이 우매하여 자치 능력이 없음으로 일본의 보호아래 있어야 한다’는 궤변으로 병탄의 당위성을 삼았던 일본에게 경술국치를 당한지 100년, 6 25 전쟁 발발 60년, 폐허를 딛고 일어선 우리는 지금 그들을 능가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있다. 또한 ‘한국은 멀었다’면서 큰 소리 치던 그들은 드디어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번 대한건축사협회 정기총회에서 일본건축사회연합회 후지모토회장은 ‘일본은 작년 초부터 건축기본법의 제정을 앞두고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바, 이미 제정된 한국의 건축기본법이 큰 참고가 된다’고 축사에서 밝혔다. 1962년 처음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을 제정할 때만 하여도, 일본법을 그대로 카피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한 일 간 건축관련법을 비교 연구한 강원대 김남각 명예교수에 의하면, 이후 한국의 건축관련제법은 일본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개발제한구역의 설정과 남북분단의 현실을 반영한 군사보호시설지구 등 한국적 현실에 맞는 법체제로 발전되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오히려 한국이 독자적으로 진보한 것이 많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뿐 완전한 극일은 먼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 건축사도 일본보다 더 많이 배출함으로써, 극일(克日)을 떠나 초일(超日)을 할 수 있는 날도 분명 오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