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응답'하지?

2016-01-01     문상원 건축사

여기저기에서 세편의 ‘응답하라’ 시리즈가 복고와 추억이 진한 향수를 일으키며 요근래 하나의 키워드로 회자되고 있다. 필자도 88년, 94년, 97년으로 시간여행을 해 보게 된다.
1988년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건축이라는 낮선 친구와 첫만남을 갖고 결국 그 친구와 인연을 맺게 된 해였고, 1994년은 제대후 대학 3학년으로 정말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서태지노래와 함께 무작정 밤새며 스스로에게 도취됐던 해였으며, 1997년은 설계사무실 입사2년차로 어슬프게 아는 놈이 더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준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드라마는 그 시절 깨알같은 소품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건축쟁이들에게는 학창시절 부의 상징이었던 레터링판박이, 패턴판박이, 색깔별 두께별로 다양함을 자랑했던 라인테이프, 잠자기 좋은 각도로 사용했던 A1제도판, 하늘처럼 모시던 트레이싱 원도 등 지금과는 많이 다른 설계환경을 떠올리게 된다. 물리적으로는 지금의 설계환경이 좋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견으로는 좋아진 건 아니고, 단지 편해졌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편해졌다는 것은 약아지고, 게으르다는 것이고,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컴퓨터 앞에서 ‘웬만한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의 스마트폰 세대들이 조그만 액정화면 틀안에서만 살고 있는 것처럼.
예전 선배님들은 원도 앞에서 선 하나도 이유 없이 그릴 수가 없었기에 지금의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세대와는 격이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편해진 것일 뿐, 절대 좋아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때였지만 편하지 않았던 시절의 초심을 학생들과의 설계수업으로 근근이 되돌아 볼 수 있음은 내게 있어 커다란 축복이라고 생각하며 수년간 겸임수업을 하고 있다. 가르치는 것보다 얻어가는 날이 더 많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 설계수업에서 몇 년 전 부터 2학기 늦가을 무렵 야외수업에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1교시에는 점심을 광장시장에서 빈대떡과 뽕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고(막걸리도...), 2교시에는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이젠 거의 다 사라진 피맛골을 포함한 골목길을 아주 많이 느리게 걷다가, 3교시에는 동대문 닭한마리에서 다리를 두들기며 소주한잔 돌려가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 후, 4교시 마지막으로 생선구이 다락방에서 얼큰한 상태로 수업을 마치는 코스다.
멀지 않은 시간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내가 가진 소중한 기억중 하나를 조금은 나누어주고 싶은 것과, 컴퓨터모니터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에서 벗어나서 그대들의 건강한 발로 행복을 찾아가는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새로운 일 년을 준비하며, 건축을 처음 만났던 우유빛깔 나에게 어떻게 ‘응답’할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