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석지연

2015-12-01     함성호 시인

당신이 원한다면 내 눈을 빌려 줄게 유리
창 밖으로 눈 내린다 목(目)요일이 한 겹
닫히고 한 겹 열린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마리 로랑생*의 일상이라면 눈앞은 더 이
상 기하학적인 것이 아니다
오늘 구름이 맡은 일은 헌 캔버스의 지상
으로 물감을 짜내는 일 하얗게 덧바른 거
리 위에 우산을 쓴 다리들이 붓질을 하면
구름이 그림을 지우고 그림 위에 그림을
올린 듯 모든 흔적을 한꺼번에 겹쳐놓은
풍경화가 된다
당신의 얼굴이 유리 안에 스며들고 창틀
은 액자로 걸린다 봄에서 가장 멀리 떨어
진 그림엽서를 꺼내 당신은 편지를 적는
다 평범한 목요일이야 그곳의 너는 읽히
지 않는구나 그러니 우리는 모두 누군가
의 초상화가 되어 죽는 걸까
유리창 너머에 사내가 눈을 쓴다 날리는
눈발에 목요일이 한 겹 열리고 한 겹 닫
힌다 엽서 어디에도 당신은 없는 단어다

* 프랑스의 여류화가, 브라크와 피카소 등과 동료였으며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다.

건축이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지상에 물감을 짜”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창틀이 액자로 걸”릴 수도 있으니 아마도 그렇게 얘기 할 수도 있으리라. 목요일은 木요일일 수도 있지만 目요일 일수도 있다. 눈이 없었으면 인간의 감각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본다’라는 것은 많은 정보를 수용하지만 수많은 욕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에서도 다른 감각이 요구된다. 듣는 건축, 만지는 건축, 그런 감각의 겹들로 이루어진 단어. 그런 공간이야 말로 시의 건축에 근접한 공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