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문화, 반세기의 흐름을 잡아야
대한건축사협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국내 건축법과 건축사법이 태동된 직 후 설립된 협회이니 대한민국건축 관련 법제도의 역사를 함께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는 그 시대의 법제도와 사회 구성원들 의식의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 간 건축을 바탕으로 한 반세기의 역사는 수많은 질곡이 있었지만 큰 흐름은 하나의 문화로서 명확했다.
서구 산업혁명의 전철을 밟으려 했던 1960년대 초, 발전도상국 대한민국의 산업화정책은 압축 고도성장의 주역이었다. 정책의 성공으로 산업주의의 각종 발상법이 우리 사회에 전 방위로 확산되었고 대량생산과 대량건설의 미덕이 우리 사회의 성취를 재는 잣대가 되었다. 한 시대를 압도했기에 산업주의는 당대의 사고방식이자 행동방식이었고 이는 바로 우리의 문화였다. 대량ㆍ대형주의는 ‘빨리빨리’의 속도문화이기도 했다. 덕분에 나라경제가 초고속 압축 성장을 이룩했지만 그 부작용은 1990년대 중반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2000년대 이천 냉동창고 화재,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와 같은 참사의 모습으로 꾸준히 드러났고 아직까지 사회 전반에서 부패를 포함해서 법질서에 둔감한 모습이 표출되고 있다.
산업주의의 건축ㆍ도시적 표출은 아파트 주거의 도입과 그 폭발적 확산이었다. 한강 변을 따라 즐비하게 들어선 아파트군은 서울의 대표적 경관이 되었고 한국의 첫 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아파트 문화를 ‘사회주의적 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이라 표현했지만 알고 보면 이는 ‘단조롭기 짝이 없는 몰(沒)취향 문화’를 뜻한다. 주택시장에서 폭발적인 수요를 불러온 아파트는 지금도 본래 집이 품고 있던 보금자리라는 인간적 가치보다는 유행 상품이자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높이 받들어지고 있다. 이것이 반세기의 흐름이자 문화였다. 나라의 경제성장이 탄력을 받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정말 아등바등 살았지만 2000년대 전후로 문화는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장식에 머물지 않고 날로 격화되는 세계경제전쟁 시대의 첨병이 되고 있다. ‘문화산업’이 그것이다. 문화강국 프랑스의 문화장관은 문화가 시장의 법칙에 종속돼서는 안 되며 ‘문화적 예외’, ‘문화적 다양성’을 반드시 지켜야 할 프랑스적 가치라 말했다. 지식기반산업 및 창조산업으로 서의 건축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건축문화강국의 꿈에서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