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2015-10-16     이옥정 건축사

건축사 아이디어가 지역사회 문제 해결,
삶의 패러다임까지 변화시켜
건축사의 재능을 선하게 사용해야..

  필자는 올해로 사무소를 개소하고 6년차가 되었다. 개소 후 지금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열정을 쏟았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간간히 각종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건축행사에서 상도 받고, 인간관계의 반경도 조금씩 넓어지고, 모든 것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건축사들이 그러하듯이 습관처럼 늘 바빴다. 그러니 어느 한순간 하늘 올려다 볼 일 만무하고, 주변 돌아보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 중에 필자의 눈길을 붙잡는 블로그 제목이 있었다. ‘건축사의 선한 영향력의 예’라는 조원용씨의 블로그 글이었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의 빈민가에서 화장실 시설의 부족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 이들을 보고 봉지로 만든 일회용 변기를 착안한 스웨덴 건축사 안데르 빌헬손의 이야기였다. 한 건축사의 간단한 아이디어가 지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삶의 패러다임까지도 변화시키고 있었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가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이 도시는 건축사의 머리와 손을 통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물론 국가정책과 국민의식이라는 건축을 옭아 메는 큰 장치가 있지만, 결국 풀어내는 역할은 건축사가 하는 것이니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집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까지가 과연 최선이었을까, 우리가 행사한 영향력이 과연 선한 것이었을까 반문해 본다. 건축사도 국가정책과 국민의식에 장단 맞추며, 제대로 된 건축이 아닌 개발일색의 부동산만 양산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필자 또한 올해 초에 도로사선제한규정이 폐지된 것을 건축주와 함께 기뻐하며, 부동산으로서의 건물의 가치를 높이는데 전력하였다. 건축주의 입장만 대변하여 왔지, 사회적으로 끼칠 영향들을 짚어보고 건축주를 설득하는 과정은 없지 않았나 싶다. 단지 지어 올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좀 더 시야를 넓게 하고 주변을 살피며 한 템포 쉬어 가야할 것 같다. 건축사가 사회적인 입장에서 접근할 때 건축도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사 개개인이 건축의 역할을 좀 더 진지하게 성찰하고, 사적인 분야의 건축을 하더라도 사회에 공공성을 나눌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여력이 된다면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두루 살피어 우리의 재능을 선하게 쓸 수 있는 곳에 영향력을 행사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바로 건축문화의 시작이며, 건축사의 위상을 높이는 지름길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