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무소가 벌이는 건축향연
3년 넘게 소박한 세미나를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의 건축잡지 <와이드>를 창간한다며 선배 사무실 한 귀퉁이에 둥지를 틀고서 암중모색하던 중, 6개월쯤 지났을까? 자의반 타의반 궁리하여 만든 공개 강좌프로그램 <땅과 집과 사람의 향기>(약칭, 땅집사향)가 그것이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저녁 7시에 열리는 이 세미나는 지난 달로 꼬박 40회를 지나며 그 사이 한 번의 걸음도 없었으니 스스로도 뿌듯하고, 찾아준 이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이 크다.
선배의 사무실(그림건축)은 전용면적이 45~6평정도 되며, 그 안에 탕비실 한 곳과 개방형 설계실에 10인이 앉아 작업할 수 있는 책상이 배열되어 있고, 대형 플로터와 복사기 등의 집기와 모형작업대 그리고 회의용 탁자, 건축 관련도서 및 설계 자료가 빼곡한 선반으로 공간이 구획되어 있는, 여느 사무실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띠고 있다. 처음 땅집사향을 기획하는 과정에서는 사무실 내 회의용 탁자가 놓여 있는 작은 공간에서 설계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출한 출발을 했다.
애초 외부공개를 원칙으로 하였기에 인터넷 카페에 주기적으로 세미나의 행사정보를 올리기를 몇 차례, 입소문을 타고 매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 사무실 내부 인원 10여 명으로부터 출발한 세미나가 외부에서 찾아준 이들로 인해 금세 20명을 넘고 통상 3~40명을 채우더니 때론 5~60명을 웃도는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 사이 비좁았던 사무실 내 세미나장소도 진화를 했다. 사무소의 공간구획을 한 달에 한 번 있는 세미나를 위한 오픈플랜 중심으로 조정했고, 세미나가 있는 날 오후에는 막간을 이용하여 공간의 변화를 단행했다. 여전히 비좁은 공간에서의 세미나이지만 참석하는 이들은 일시적으로 변형되는 공간에 익숙해졌고, 불편함을 호소하기보단 그래서 되레 좋았다고 응원해주었다.
작은 사무소에서 개최하는 공개세미나가 흔한 것은 아니다. 서울 통의동 H건축사사무소가 가장 연륜이 깊으며, 땅집사향 다음으로 서울 정동에서 열리는 K도시건축연구소도 지난해부터 대오에 합류했다. 대형 사무소들이 개별 주최 또는 공동주최의 형식으로 세미나 자리를 마련해오고 있음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데 대체로 기업 내부의 프로젝트와 연관된 프로그램으로 운용됨으로써 직원재교육 차원을 크게 벗어나 있지를 못한 점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에 비해 작은 사무소에서의 세미나는 나름 일반에 공개를 전제로 한 주제의식이 분명하여 건축계 및 일반 대중에게까지 열린 강좌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대학원 수업을 작은 사무소와 병행하는 경우도 채집된다. 서울의 P교수는 대학원 수업을 건축사무소와 연계하여 강의실을 벗어나 특정 사무소의 회의실에서 대학원생들과 그 사무소의 직원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 어우러진 이동형 세미나를 추진한 바 있음을 전해주었다. 강의실 밖 세미나의 성과를 논하는 것이 무리가 있겠지만 결과는 매우 흡족했다고 말했다. 건축사사무소가 세미나 기획을 주도적으로 도모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대학의 개개 연구실과의 연계 프로그램은 나름 활용여지가 있음에 분명하다.
지금, 상대적으로 작은 사무소들이 개성 있는 공개세미나 등 자체 프로그램을 갖고 어려운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벌이는 건축향연이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가 쉽게 기획하고, 공조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확신한다. 그로써 각개 사무소의 특성을 만들고 스태프들의 자긍심을 길러주며, 나아가 격무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시야를 넓혀줌과 사회성을 진작시킴은 물론 현재 자신이 속한 집단에의 소속감을 키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진 않다. 많은 사무소들이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설계지원 내부 세미나 조차 이어가는 것이 여건상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니 외부 공개세미나 운위하는 것은 배부른 자의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땅집사향을 운영해오면서 매달 만나게 되는 일반 참가자들의 면면을 통해 기존의 대학과 단체, 사무소들이 운용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의 공개세미나를 지역별로 중심 되는 곳에 건축정보센터(가칭)를 만들어 담는 방법을 강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곳에 산개한 강좌 프로그램을 한 장소에 모으고, 측면 지원해 줌으로써 건축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스스럼없이 배움과 발견의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그런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을 당장 준비할 수 있는 기관은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아닐까? 기왕에 애써 제정한 건축기본법에 어울리는 건축문화진훙의 발판을 구축하는데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