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신뢰(信賴), 국민을 보고 가라
약속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세계 속에서 말과 행위를 하며 자기 인격을 지속시키며 살아가기 위한 인간 삶의 조건이며 동시에 인간 상호간의 신뢰에 기초한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다. 약속이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하는 의지와 신뢰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 행위이며, 자신의 인격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역사 속에서 보존하고 이어가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칸트의 ‘약속의 의무’에 따르면 인간의 약속하는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자기가 누구인지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자신을 증거 하는 도덕적 능력에 해당된다. 이는 자연인이 아닌 법인에도 해당된다.
국회계류 중인 건축법 개정안 처리가 다시 보류됐다. 의원 입법안이 재상정됐지만 지난 법안소위의 의견에 따라 사실 상 한국건축가협회(이하 가협회)와 대한건축사협회(이하 사협회)의 합의 내용이 상정된 것이다. 결론은 ‘사후설계관리 임의 수용’을 밝힌 국토교통부의 의견에 대한 재합의가 필요하다고 정리됐다.
결과를 떠나서 가협회의 행보는 자가당착적이다. 합의 안에는 합의 내용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관철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한 가협회의 움직임은 지난 8월 합의 후 국토교통부를 함께 방문, 사후설계관리 조항의 수용이 어렵다는 의견을 청취한 것이 전부다. 이번 법안소위 임박해서는 두 조항이 동시 추진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합의무효 확인서’를 가협회장 이름으로 국회에 뿌렸다. 본인들은 합의안에 대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으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 간 사협회는 합의안 관철을 위해 정부를 설득하고 의원설명을 다니는 등 집행부와 17개 시도회원이 백방으로 노력했다. 사협회의 설명 자료집을 봐도 의지가 분명하다. 합의무효의 근거가 무엇인지, 합의안 관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가협회장과 집행부는 소속 지회원들은 물론 사협회 회원들에게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약속이라는 도덕적 능력이 부재하다면 또 다른 합의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단체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 진정 옳은 길이라면 다수의 국민을 바라보고 정진하라.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도 그 진정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