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죽이는 말

2010-02-01     장양순 건축사

  사명당이 서산대사의 도력이 높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 나섰다. 그가 올 것을 알고 있던 서산이 문을 열고 한발을 내딛는 찰라, 사명은 공중에 날던 참새 한 마리를 나꿔채고는 서산에게 물었다. '이 손에 있는 참새가 죽을까요 살까요?' 그러자 서산이 되받아쳤다. ‘이 몸의 한 발은 방 안에 있고 한발은 방 밖에 있으니, 이 몸이 지금 밖으로 나갈까요 안으로 들어올까요?' '그야 밖으로 나오시겠죠.''그렇습니다. 사명이 오셨는데 맞이해야지요.' 사명은 방 안에 들어선 후 다시 물었다. '이 손안의 참새는 어찌되겠습니까?' '불도를 닦는 분이 어찌 살생을 하겠습니까?' 이상은 사명당이 서산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 첫 만남의 일화이다.
  옛 날 옛적 그리스에 유명한 선생님이 계신 학당이 있었다. 젊은이 하나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학비가 없었다. 그는 선생을 찾아가 말했다. '제가 선생님보다 실력이 나아질 때, 한꺼번에 학비를 갚겠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자는 스승에 비견되는 학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에 스승은 밀린 학비를 청구하였는데 제자가 묵묵부답이자 소송을 제기하였다.    재판정에 선 제자가 변론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학비를 낼 것이 없습니다. 재판에 이기면 이겼기 때문이고, 재판에 지면 아직 선생님보다 못 하다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스승이 답변했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재판에 이기면 이겼기 때문에 받아야 하고, 재판에 지면 이미 제자의 실력이 나를 능가했기 때문입니다.' 기원 전 5세기경 아테네에서 유행한 소피스트들의 궤변 중 하나이다.
  두 이야기는 상대를 곤궁에 빠뜨리려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전자는 상대의 지혜와 기지 등 사람됨을 알려는 살리는 말이고, 후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언어의 유희요 사술로서 사람을 죽이는 말이다. 따라서 전자는 긍정의 힘이 있어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데 반하여 후자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후퇴시키는 어둠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며칠 전 통합을 반대했던 분들을 주로 모신 건축단체통합 좌담회에서, 통합위는 그들의 반대요인을 반영한 안들을 준비하고 사안별 논의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관련 없는 말들이 쏟아지고, '통합은 해야한다'하면서도 뒷말은 부정투성이였다. 그들 대부분이 현 임원이거나 임원을 거친 분들로서 누구보다 득실을 잘 알텐데도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데는 그들 말대로 본 건 외적인 어떤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해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