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언론
평생 건축을 해오다가 오년 전 뜻하지 않게 언론사 대표가 되어 외도를 했다. ‘경남도민일보’라는 제호의 일간신문 대표를 맡아 만 4년 넘게 일했다.
4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30년 이상 몸담았던 건축의 긴 세월에 비하면 일천한 시간, 제 몸 깊숙이 배인 건축인자가 변하는 데는 턱 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건축은 마치 오래 입어 몸에 잘 맞는 점퍼처럼 자연스러웠지만, 언론사 대표의 일은 낯설었고 그래서 적잖이 힘들었다. 하지만 건축을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별의별 일을 많이 겪었고 보람도 많았다.
건축작업과 신문제작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취임직후 부산경남건축사신문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실제 신문사 경영을 하면서 더욱 실감했다. 대략 열 가지만 꼽아 보겠다.
첫째,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광고 및 글자, 제목, 기사와 그림 배치 등 신문의 모든 것도 건축처럼 디자인한다. 경험해 보니 신문의 판을 짜는 것은 현상공모 때의 패널제작과 너무 흡사하다. 건축은 주로 그림이지만, 신문은 대부분 글로써 디자인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째, 협동해서 일한다. 디자인, 구조, 전기, 기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건축 작업이 진행되듯이 신문도 기획, 취재, 편집, 제판, 인쇄, 배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독자의 손에 신문이 전달된다.
셋째, 큰 조직은 돈이 되지만 작은 조직은 경영이 어렵다. 대형설계사무소는 할 만하지만 그 밖의 사무소는 운영이 어려운 것처럼 신문사도 마찬가지다.
넷째, 전문직이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건축 쟁이들이 그렇듯이 신문쟁이들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매우 높다.
다섯째, 결과물을 남에게 보여준다.
여섯째, 창의적 상상력이 풍부해야 수준 높은 건축물과 기사(記事)가 생산된다.
일곱째, 현장이 있다. 공사현장과 취재현장.
여덟째, 술 담배 많이 한다. 언론인의 평균수명이 짧다고 해 업무과중이러니 생각했는데 직접 들어가서 보니 술 담배 때문 아닌가 싶었다.
아홉째, 밤늦게까지 일한다. 경남도민일보는 조간(朝刊)이라 새벽 배달을 위해 한밤중에 제작한다.
열 번째, 건축과 신문 모두 민(民)을 위해 일하지만 관(官)과 관계를 많이 한다.
서로 다른 점도 많다. 딱 한 가지만 말해보면 건축에서는 언론을 다루지 않지만 언론에서는 건축도 다루는 점이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신문사 경영에 그리 성공하지는 못했다. 제 능력 부족 탓이겠지만 현 신문시장의 상황 탓도 컸다. 하지만 정론을 펴도록 최선을 다했고, 특히 지방언론으로서의 자기소명에 충실했다고 자부한다. 지금은 쉬고 있지만 상황과 조건이 적절해지면 다시 건축을 할 것이다. 천직(天職)에 대한 저의 믿음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빌려, 단지 동료 건축사였다는 이유하나로 당시 신문을 구독하거나 후원해주신 경남 회원들께 특별히 감사의 말씀드린다. 제게 큰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