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마음, 고개

2025-11-25     함성호 시인

마음, 고개

- 박준


당신 아버지의 젊은 날 모습이
지금의 나와 꼭 닮았다는 말을 들었다

잔돌은 발로 차거나
비자나무 열매를 주워들며
답을 미루어도 숲길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한참 먼 이야기
이를테면 수 년에 한 번씩
미라가 되어가는 이의 시체를
관에서 꺼내 새 옷을 갈아입힌다는
어느 해안가 마을 사람들을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서늘한 바람이
무안해진 우리 곁으로 들었다 돌아나갔다

어깨에 두르고 있던 옷을
 툭툭 털어 입으며 당신을 보았고

그제야 당신도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으로 같이 하지 않아도
좋았을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2018년

죽은 사람에 대한 의식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조장과 같이 기후와 풍토 때문에 생긴 장례문화도 있지만 우리의 제사나, 미라의 옷을 갈아 입히는 풍속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관념을 반영한다. 그 관념의 대부분은 죽은 사람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거나 죽어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온다. 어디에나 있다는 말은 아무데도 없다는 말과 같다. 거꾸로, 죽었으므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늘 우리와 함께 한다는 말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