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 2025 부산다운건축상 우수상 수상작 ‘어반에그’(유대우 건축사, 유가건축사사무소)

부산 구도심에 ‘쉼’의 의미를 다시 세우다 소음 지우고 마음을 비추는 공간, 유대우 건축사 “건축은 결국 사람의 삶을 더 깊게 이해하는 일”

2025-11-21     서정필 기자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5 부산다운건축상 우수상 수상작 ‘어반에그’(유대우 건축사, 유가 건축사사무소)다.

2025 부산다운건축상 우수상 어반에그. (사진=남상인)

부산광역시 부산진구(釜山鎭區)는 오랫동안 부산의 생활 중심축으로 기능해 온 지역이다. 서면을 중심으로 상업과 의료, 교통 기능이 집적돼 ‘도시의 허리’ 역할을 맡았다. 산업화 시대, 대한민국 제2도시 부산의 핵심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부산의 도심성은 점차 수영과 해운대권으로 이동했다. 대규모 개발의 중심축이 타 지역으로 옮겨간 뒤 부산진구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새로운 리듬을 찾아 나서고 있다. 전포동은 이러한 변화가 가장 뚜렷하게 읽히는 곳으로, 서면과 가깝지만 그 빠른 흐름과는 다른 자기만의 도시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낡은 주택가, 소규모 상점, 공방과 카페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이 지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부산의 변화를 집약해 보여주는 곳이 됐다. 2025 부산다운 건축상 우수상 수상작 ‘어반에그’(유대우 건축사, 유가건축사사무소)는 이곳 전포동 카페거리 근처에 자리한다.

전포 카페거리는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상업지구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저렴한 임대료를 기반으로 청년 창업자와 소규모 창작자들이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골목 생태계다. 오래된 단층 건물이 카페와 공방, 서점, 디자인 숍으로 변하면서 골목의 분위기가 바뀌었고, 좁은 도로 폭과 낮은 건물 스케일, 사람 중심의 보행 환경은 머물기 좋은 장소성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단순한 소비보다 걷기와 머무름 자체를 즐기며 도시를 경험한다.

설계는 이 도시적 맥락에서 출발했다. 건물은 처음에는 5층 규모의 상업시설로 기획됐다. 이어 건축주와 설계자가 “전포동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얻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단순한 상업시설보다 ‘머무름’을 제공하는 공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였고, 결국 스테이 프로그램을 결합한 복합공간으로 다시 정의됐다.

2025 부산다운건축상 우수상 어반에그. (사진=남상인)

설계자 유대우 건축사가 고민한 설계의 핵심은 ‘도심의 소리에서 멀어지는 동선’을 만드는 일이었다. 외부에서 이어지는 길은 점차 소리를 덜어내고 시각을 닫아가며, 방문자가 도시의 속도를 뒤에 두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장치로 작동한다. 건물을 따라 이어지는 곡면 동선은 외부의 혼잡으로부터 천천히 멀어지는 시간을 제공한다. 곡선을 따라 걷는 일은 의도된 경험이며, 그렇게 도달한 타원형 내부에서는 시각과 청각이 극도로 절제된다.

고민 끝에 건물 형태는 수공간에서 퍼지는 감각을 감싸는 쉘 구조로 발전했고, 유선형 곡면이 겹겹의 레이어를 만들며 동선의 흐름을 유도한다. 재료 선택은 더욱 과감하게 절제됐다. 전체 공간은 오직 콘크리트 하나로 마감되었고, 송판 거푸집이 남긴 미세한 결만이 자연의 흔적처럼 남았다. 인위적 장식을 배제해 사용자의 감각이 본질적인 고요로 집중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건축가는 “표현을 덜어낼수록 사람의 행위가 더 선명해진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어반에그의 재료와 디테일에 가장 정확하게 반영돼 있다.

유 건축사는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곡면의 정확한 구현이었다고 밝힌다. 미세한 곡률을 도면화하고 시공 가능하도록 수치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면과 동일한 곡면 비율로 1/100 모형을 제작했고, 이 모형을 통해 시공 중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사전에 검증했다. 이후 도면, 모형, 3D 모델을 모두 시공사에 전달하고, 디자인 감리를 통해 현장에서 세밀하게 조율함으로써 설계 의도가 그대로 실현될 수 있었다.

다음은 설계자 유대우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유대우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유대우 건축사, 유가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Q. 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두었던 점을 설명 부탁드립니다.
처음 기획은 트렌디한 5층 규모의 상업시설이었습니다. 하지만 건축주와 여러 차례 논의를 이어가면서, 전포를 찾는 다양한 사람들이 더 특별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장소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상업시설을 넘어 ‘스테이’를 함께 구성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고, 결국 상업시설과 스테이 객실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프로그램이 재정의됐습니다. 목표는 도심 속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주변 환경과의 조화였습니다. 상업시설이 밀집한 거리의 분위기와 ‘쉼’을 전제로 하는 스테이의 성격은 쉽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오래된 공구상가의 기계음, 상업시설과 도로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소음은 스테이가 지향하는 고요와 충돌했습니다. 스테이라 하면 흔히 해안이나 숲 같은 자연환경을 떠올리는 선입견 역시 설계의 난제로 작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도심 속 접근성은 분명한 장점이었습니다. 외부 소음을 어떻게 다루고, 이 공간을 방문한 사람이 ‘머무름’을 어떤 의미로 체감해야 할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도심이라는 조건 속에서 ‘휴식의 감각’을 다시 정의하는 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그 염두에 두셨던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내부는 철저히 고요를 향해 설계했습니다. 외부에서 이어지는 길은 점차 소리를 줄이며 평온으로 스며들도록 구성했고, 방문자는 도시의 소음을 뒤로한 채 자신만의 사유 속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두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동선을 갖는데, 특히 곡면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외부의 소음과 시각적 혼잡에서 천천히 멀어지는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그 길을 따라 이동하는 순간이 곧 내면을 비우는 과정이 됩니다.

타원형 내부에 도달하면 시각과 청각은 극도로 절제된 경험만을 맞이합니다. 눈앞에는 수공간이 펼쳐지고, 귀에는 물소리만이 남습니다. 자연의 소리와 일체되는 적막이 공간을 감싸며, 외부와 단절된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건축의 형태는 이러한 ‘이끄는 동선’에서 비롯됐습니다. 유선형 곡면이 겹겹이 쌓인 쉘터 형태로 발전하며, 중심부의 수공간에서 퍼지는 물소리가 건물 전체에 은은하게 울려 퍼집니다. 저는 이 공간을 ‘어반에그(urban-egg)’라고 부릅니다. 도심 속에서 마주하는 달걀 같은 내부 공간은 내면을 위한 방이자, 고요가 태어나는 생명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재료 선택은 더욱 절제했습니다. 사용한 재료는 오직 콘크리트 하나였습니다. 무채색에 가까운 질감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품고, 공간을 향한 집중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표현을 덜어낼수록 사람의 행위가 더 선명해진다”고 말합니다. 송판 거푸집이 남긴 은은한 결은 자연을 떠올리는 최소한의 흔적처럼 남으며, 이곳이 결국 사람을 중심에 둔 공간임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설계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부분은 곡면을 도면에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었습니다. 미세한 곡률을 수치화해 도서로 정리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이를 시공사가 현장에서 얼마나 정밀하게 구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컸습니다.

해결책으로 실제 도면과 동일한 비율의 1/100 모형을 제작했습니다. 모형 작업은 시공 단계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사전에 검증하는 과정이었고, 곡면 디테일을 실물에 가깝게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됐습니다. 공사 착수 후에는 도면, 모형, 모델링 원본을 모두 시공사에 제공하고, 디자인 감리를 통해 공정마다 직접 관여했습니다. 설계 의도를 세밀하게 공유하며 조율한 끝에, 복잡한 곡면 구조의 쉘터 공간을 큰 무리 없이 실물로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Q. 건축 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요?
건축사로서 저는 먼저 환경을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며, 그 주변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사람과 자연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공간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지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그 답은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건축과 사람이 하나의 흐름처럼 어우러질 때 비로소 편안함이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건축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뿐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에서 건축이 시민들과 어떤 방식으로 교감하는지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향하는 건축은, 도시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더 잘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장면’을 담아내는 건축입니다.

Q. 그 지향점을 이번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프로젝트에서 저는 ‘비움’이라는 개념에 집중했습니다. 자연의 고요한 감각을 온전히 경험하게 하기 위해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고, 그 빈자리에는 자연의 감각을 채우고자 했습니다. 물소리, 바람소리, 곡면을 따라 흘러드는 빛과 그림자가 공간의 주인공이 되도록 구성했습니다.

복잡한 도심의 일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비워낸 순간, 방문자는 자신만의 정체성과 사유의 결을 다시 채워 넣게 됩니다. 저는 이 공간이 그런 경험을 온전히 전달하길 바랐습니다. 주변의 소음과 시각적 요란함 속에서 반전의 공간을 제시함으로써,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자신을 잠시 마주하고,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 정리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건축이 만들어주기를 바랐습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이번 수상은 저 혼자만의 성과라기보다, 이 작업에 참여한 모든 분과 함께하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주의 기획과 투자, 시공사의 높은 구현 능력, 그리고 설계 의도를 존중해준 협업 구조가 없었다면 이 프로젝트는 완성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이번 작품이 앞으로 주변에서 지어질 다른 건축물들에게 작은 참고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점입니다. 좋은 공간은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그런 공간이 모일 때 도시도 더 아름답게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결국 건축은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며, 공간이 주는 감동은 그 경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건축상은 서로를 이해하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을 꾸준히 지켜가고 싶습니다.

Q. 근래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요즘에는 ‘환경적인 건축’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있습니다. 한정된 자연과 자원을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기 위해, 건축이 환경의 일부가 되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기보다 리모델링을 통해 시간과 자원을 존중하는 방식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공법과 재료 또한 잠깐 쓰이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지속될 수 있는 방식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이용자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공감의 공간. 그런 건축이야말로 시대를 넘어 전달될 ‘삶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