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공건축물 생애 주기동안 건축사의 지속적인 마스터플래너 역할 필요
공공건축물이 완성되어 사용되는 과정에는 지속적인 공간적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의 경우 급식실이나 실내체육관이 증축되고, 석면을 철거하며 많은 내장재료가 변경되고, 화장실, 도서관 리모델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학생 수가 증감이나 학제 변화로 인해 홈베이스 공간이 생기는 등 실배치를 달리하거나 교사동을 증축되는 경우도 있다. 관공서의 경우도 다양한 변화과정을 거치게 된다. 부서 조직개편에 의해 업무공간의 위치가 달라지기도 하고, 사용자들의 요구에 맞춰 일부 실들이 다르게 꾸며지곤 한다. 이러한 변화가 수십 년간 쌓이게 되면 수의계약 혹은 입찰과정을 통해 설계자가 선정되고 변화가 필요한 때마다 각각 다른 건축사가 해당 공간을 설계하게 된다.
상기의 변화과정이 누적되면 최초 설계자가 만들어낸 공간이 가졌던 느낌이 변화하여 각각의 공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학교 내의 다양한 교실들이 서로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의 공공건축물이 최초설계자의 의도를 존중하면서도 다양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증개축될 때 공간적 맥락을 유지하기 위한 마스터플래너의 존재가 필요하다.
대규모의 건축물이 최초로 계획되는 과정에서는 마스터플래너가 선정되거나, 건축 기획 단계를 거치며 전체적인 큰 틀에 대한 스터디를 거치지만 기본 및 실시계획이 시작되면 선행한 계획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어렵게 된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마스터플래너 역할을 담당할 건축사가 배정된다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용이할 것이다.
적어도 공공건축물의 경우 수십 년 이상의 건축물 생애 주기를 포괄하도록 마스터플래너를 지정해 두고, 부분적인 증개축 설계업무가 있을 때 이들의 자문을 통해 전체 건축물의 통일성과 설계자의 의도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큰 비용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넓은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재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총괄건축가 역할에 비하면 작은 규모의 업무로 볼 수 있다. 큰 규모 건축물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진 건축사가 대규모 공공건축물에 대해 장기적으로 자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공건축물이 시간에 따라 덧칠된 공간의 집합이 아닌 완성도 높은 하나의 건축으로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매년 반복되는 부분 수선이 ‘짜깁기된 공간’이 아니라, 처음의 철학과 미학을 품은 ‘진화하는 건축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제도의 도입은 건축사의 전문성과 위상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