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공모 당선안의 그림자 - 현실에서 변형되는 이상
건축 설계공모는 이상을 그리는 무대다. 청년의 건축사부터 노련한 건축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도시와 사람, 장소의 미래를 상상하며 경쟁한다. 공모전의 결과로 발표되는 ‘당선안’은 그 과정의 결실이자, 사회가 바라는 건축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건축이 현실로 지어질 때의 풍경을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이상’은 실제 건설 단계에서 종종 뒤틀리거나, 때로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의 벽이 높다. 설계공모는 대체로 한정된 예산 속에서 진행되지만, 심사 과정에서는 디자인의 창의성과 상징성에 비중이 크게 주어진다. 당선 이후 실시설계와 시공 단계로 넘어가면 한정된 공사비보다 증가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 공사비 절감 요구와 행정 절차 속에서 재료, 구조, 디테일 등이 줄줄이 수정된다.
발주처는 예산 절감을 요구하고 설계자는 그 안에서 최대한의 조정을 시도하지만 결과적으로 재료는 단순화되고 구조는 축소되며 세심한 공간 의도는 사라진다. ‘당선안의 설계개념은 유지하되 현실적으로 조정한다’는 말은 그래서 ‘비용에 맞게 줄인다’는 말로 변질된다.
또 다른 이유는 설계자와 발주처 간의 소통 부재도 크다. 공모 단계에서는 ‘심사위원’이 판단하지만, 이후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이는 ‘발주처 담당자’다. 심사 과정에서 높이 평가된 건축적 개념이 실제 행정이나 유지관리 입장에서는 불필요하거나 부담스러울 수 있다. 설계자는 당선 이후 ‘참여 설계자’로서 의견을 제시하지만 결정권은 발주처와 시공사에게 넘어간다. 그 결과, 설계자는 설득에 지치고, 발주처는 효율을 이유로 타협한다. 당선안의 철학은 그렇게 조금씩 사라진다.
시공 현실의 한계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공공건축의 시공은 입찰제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세심한 디테일이나 특수 재료는 시공사가 감당하기 어렵다. 공사비 절감, 시공 경제성, 시공 효율성 등을 이유로 시공사는 재료나 디테일 변경을 요구하고 발주처는 일정과 예산을 이유로 이를 수용한다. 설계자는 종종 ‘그렇게는 못 만든다’는 말을 들으며 설계 의도를 포기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설계자, 발주처, 시공자, 감리자 어느 누구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복합적인 과정 속에서 생겨난 문제들이다. 다만 상기의 문제들로 인해 설계공모 제도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시민들은 ‘공모에서 본 건물’과 ‘완공된 건물’의 차이에 실망하고, 건축사는 자신의 작품이 변질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공공건축의 창의성이 점차 사라진다는 점이다. 결국 ‘이상’보다 ‘관리 가능한 건축’이 선택되는 현실이 된다.
이제는 공모 이후의 과정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건축은 도면 위의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구현된 윤리와 태도다. 설계공모의 진정한 성공은 화려한 당선 발표가 아니라, 그 이상이 얼마나 훼손되지 않고 현실에 서 있는가로 판단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모가 아니라, 당선안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공모 이후의 구조일 수도 있다. 이상이 현실에 도달할 수 있도록, 건축의 과정 또한 건축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