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평가하기 두려움 일까, 평가받기 두려움일까

2025-10-14     이민기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민터(대구광역시건축사회)
이민기 건축사(사진=건축사사무소 민터)

어느덧 개업 6년 차가 되었다. 민간 설계 시장은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많은 사무소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설계공모에 눈길이 가지만 당선작 선정 과정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뭔가는 해야지” 혹은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설계공모에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하다. 필자 또한 비슷한 생각으로 공모에 참여했다.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부터 시작해 보자는 마음이었지만, 결과는 아쉬움이 남았고 부족한 부분도 크게 느껴졌다.

최근 참여한 설계공모의 심사중계를 지켜보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발주처에서는 공정성을 위해 온라인 생중계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발주처마다 중계 방식이나 심사 진행 절차가 달라 참가자 입장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소개가 끝난 뒤 심사 방법 결정 단계에서 더 이상 중계를 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한 심사위원은 “여러 달 고생해서 제출한 모든 안에 대해 간략한 평가라도 하자”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심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님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공모안을 받아 사전 검토를 마쳤으니, 작품 수를 고려할 때 하나하나 논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며 빠른 투표 방식을 택했다.

결국 순위권에 오른 소수의 작품만 간단히 언급되었을 뿐, 나머지 안은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조차 없었다. 제출된 작품 수가 25개에 불과했지만, 다른 설계안은 중계를 통해 살펴볼 기회조차 없었다.  

특히 심사 과정을 보며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드러나는 듯해 씁쓸했다. 전문 자격을 갖추고 정성을 다해 만든 결과물이 정당한 평가조차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편함을 넘어 허탈함으로 다가왔다.

그 경험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 사회는 ‘작품을 평가하기 두려워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평가를 다시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평가란 단순히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절차가 아니라, 전문성을 존중하고 서로 배우는 과정이어야 한다. 설계공모의 심사 또한 그러해야 한다. 누군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평가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향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나아가 평가 과정은 단순한 절차적 공정성을 넘어, 젊은 건축사들에게는 성장의 기회이자 사회 전체의 건축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어야 한다. 평가를 통해 배우고, 배움을 통해 다시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공모제도의 의미가 살아난다. 언젠가 나의 작품도, 다른 이의 작품도 존중받으며 정직하게 평가받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