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 제43회 서울시건축상 대상 수상작 ‘코어해체시스템’(한양규 건축사, 주.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
기본을 지켜 더욱 특별해진 건축 보는 이와 사는 이를 함께 배려한 설계 한양규 건축사 “건물을 쓰는 사람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맡은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제43회 서울시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코어해체시스템이다.
인터뷰 장소로 향하며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고정관념이 깨졌다. 이름부터 트렌디한 ‘푸하하하건축사사무소’였기에 구로디지털단지나 마곡, 상암동쯤일 거라 짐작했지만 실제 위치는 을지로3가였다. 기자에게는 유년 시절 야구 구경을 가기 위해 환승하던 역으로만 기억되던 곳이다.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 시간여행을 시작하려던 순간, 엘리베이터가 나타났다. 지하철역에서 불과 2분 거리, 당도한 사무실 문에는 ‘FHHH(푸하하하)’라는 작은 표식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열자 건축 모형과 다양한 소재, 여러 대의 데스크톱 컴퓨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제43회 서울시건축상 대상 수상작 코어해체시스템(한양규 건축사,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성수동 긴 직사각형 대지 위에 들어선 코어해체시스템은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의 JKND 사옥이다. 1층은 로비, 2∼3층은 ‘디스이즈네버댓’과 ‘카키스’ 매장, 4층은 미팅룸, 5층부터는 오피스가 배치됐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빌딩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중앙의 가위계단과 양 끝 엘리베이터가 드러내는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띈다.
설계자 한양규 건축사는 정형화된 코어를 해체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중앙에 두던 엘리베이터를 양 끝으로 과감히 밀어내고, 중앙에는 가위계단을 배치해 층간 이동을 자유롭게 했다. 기둥이 사라진 중앙은 넓고 유연한 공간으로 바뀌었고, 부서 간 회의와 소통이 잦은 패션 회사의 리듬을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수시로 회의와 미팅이 이뤄지는 사무실의 특성이 설계에 반영된 것이다. 실제 이용 방식을 고려한 결과였다.
겉모습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담백함이 성수동이라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더 크게 돋보인다. “핫한 지역일수록 기본에 충실한 건물이 더 오래 살아남습니다. 보여주기식 외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도록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건축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던 건물이 건축사의 설명을 통해 본질적 가치로 다가왔다.
코어해체시스템은 외부 고객과 내부 직원을 위한 동선을 명확히 구분했다. 지하 2층에서 지상 3층까지는 고객 전용 공간과 전용 엘리베이터, 4층은 미팅룸과 사내 공간, 5층 이상은 직원 전용 오피스와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로 나뉜다. 1층에는 스피드 게이트를 설치해 보안을 강화했다.
한양규 건축사는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안에서 살아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더라도 실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만족하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런 방향을 지켜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푸하하하 건축사사무소의 사무실 자리 역시 이 철학과 닮아 있다. 홍대에서 출발해 종로를 거쳐 현재의 을지로3가로 옮긴 그들은, 오래된 건물이지만 관리가 잘 되고 필요한 시설이 충분히 갖춰진 공간을 선택했다. 화려함보다 내실과 편의를 중시한다는 믿음이 사무실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직원들의 출퇴근 거리를 고려했고, 기본에 충실한 건축인지 살폈다는 설명이다.
다음은 ‘코어해체시스템’ 설계자 한양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한양규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 ‘코어해체시스템’의 설계하시면서 어떤 점을 고려하셨는지요?
이곳은 JKND 사옥으로 사용될 건축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 운영 방식과 인원 계획 같은 현실적인 조건을 많이 고려했습니다. 대표님 등 실제 그 안에서 일상을 보낼 분들의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공간을 어떻게 나누면 효율적일지, 사람들이 쓰기에 편리할지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외형보다는 실제로 편하게 활용될 수 있는 건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결국 기본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출발점이었습니다.
Q. ‘코어해체시스템’의 건축적 특징을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가장 큰 특징은 동선입니다. 건물 중앙에 계단을 두어 누구나 쉽게 층간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엘리베이터는 양쪽 끝으로 분산시켰습니다. 보안을 강화하고 이용 편의를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3층부터 지하 2층까지는 고객, 5층 이상은 직원이 쓰도록 구분했습니다. 고객은 단순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갈 수 있고, 직원은 독립적이고 안전한 동선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건물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기능별로 정교하게 나뉜 셈입니다.
Q. 이곳에서 이용자들이 실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고려하신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실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그들이 주로 어떤 활동을 할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Q. 코어해체시스템이 위치한 성수동의 지역적 맥락은 어떻게 고려되었습니까?
기자님 말씀처럼 성수동은 몇 년 전부터 소위 가장 ‘핫’한, 트렌드를 선도하는 지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설계에서는 그런 스타일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변 건물과 스케일을 맞추려 했습니다. 요즘 성수동에는 눈에 띄려는 건물들이 많지만,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건물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고 생각했습니다.
Q. 건축사로서 코어해체시스템에 담은 철학과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어떤 시선에서는 건축사를 남의 돈으로 자신의 예술 활동, 즉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축사는 동시에 공공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기본과 기초를 지키고,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최우선에 두려 합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건물보다 오래도록 편안하게 쓸 수 있는 건물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Q. 사무실이 구도심에 자리 잡은 특별한 이유가 혹시 있는지요?
저희 사무소는 처음 홍대에서 시작해 종로를 거쳐 지금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 서울 도심의 활기를 느껴보고 싶은 마음, 주변 환경을 모두 고려한 결과입니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되고 필요한 시설이 있어 불편함이 없습니다. 사무소의 철학과도 닮아 있습니다. 화려함보다 실질적인 편의와 내실을 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