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건축사라는 이름이 가벼워진 사회에서

2025-08-26     이병희 건축사·루다건축사사무소 (충청북도건축사회)
이병희 건축사(사진=루다 건축사사무소)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한 지 어느덧 6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경험도 조금씩 쌓여 오고 있지만, 아직 ‘자리를 잡았다’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다. 설계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그리고 건축사라는 이름이 지금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내 주변의 시선과 비교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외국에 사시는 친인척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권에서 건축사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접하게 된다. 그분들이 나의 직업을 들었을 때 “멋지다”, “전문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갖춘 일”이라며 진심으로 부러워할 때가 많다. 그들이 말하는 건축사는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공간으로 풀어내는 존경받는 전문가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건축사로 살아가는 현실은 그 이상적인 이미지와는 꽤 거리가 있다.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책임에 비해 권한은 적고, 창의적인 설계보다 행정적 절차와 규제 대응에 더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는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다. 특히 민간 영역에서는 설계비 자체가 낮게 책정되거나, 설계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그 과정에서 건축사가 해야 할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적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럴수록 이 일이 주는 의미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된다. 때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건축 설계 환경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커진다. 건축사가 단순한 캐드작업자나 인허가 전문가가 아닌, 사회와 도시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존중받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그래야 필자를 포함한 젊은 건축사들도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고, 건축주 역시 더 신뢰할 수 있는 설계를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그 공간을 설계하는 건축사 역시 사회 속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건축사라는 이름이 다시 무게를 가질 수 있는 사회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