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답사수첩] 자연과 역사가 깃든 평온의 숲, 상주 상오리 솔숲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상오리에 자리한 상오리 솔숲은 단순히 나무가 우거진 숲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푸른 소나무들이 뿜어내는 싱그러운 내음과 함께 고즈넉한 풍경은 방문객에게 평온함을 선사하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려 시대로부터 이어져 온 숲의 이야기
상오리 솔숲은 상주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으로는 농경지와 야산이 어우러져 목가적인 풍경을 이룬다. 솔숲은 해발 약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어 접근성이 쉬우며, 방문객들은 비교적 편안하게 숲을 거닐 수 있다. 지리적으로 한적한 곳에 있어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상오리 솔숲은 그 형성 시기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활동했던 문신이자 학자인 전이(全毅) 선생이 조성한 숲으로 알려져 있다. 전이 선생은 당시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의 기운을 보강하고 재해를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솔숲 내에는 전이 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약 600년 수령의 거대한 소나무들이 여럿 남아 있어 그 역사성을 웅변하고 있다.
또한, 상오리 솔숲은 단순히 개인의 의지로 조성된 것을 넘어, 마을의 공동체적 노력이 스며들어 있는 곳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주민들은 숲을 보호하고 가꾸는 데 힘써왔으며, 이는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울창한 숲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산림 수탈 정책으로 인해 훼손될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주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숲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상오리 솔숲을 단순한 자연림이 아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만들어 온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천연기념물 소나무들의 위엄과 생명의 다양성
상오리 솔숲의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수백 년 된 아름다운 소나무들이다. 특히, 솔숲 내에는 흉고 둘레가 2~4m에 달하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100여 그루 자생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수령 100년 이상, 심지어 300~600년에 이르는 노거수들이다. 이들은 가지가 옆으로 길게 뻗어 마치 용이 꿈틀대는 듯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며, 다른 지역의 소나무 숲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경관을 연출한다. 1984년 이 솔숲 전체가 ‘상주 상오리 소나무 숲’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제293호’로 지정되어 그 생태적 가치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았다.
솔숲의 소나무들은 주로 육송(조선소나무)이며, 곧게 뻗은 줄기와 붉은 수피가 인상적이다. 숲 바닥에는 소나무잎이 두껍게 쌓여 부드러운 흙길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로는 다양한 풀꽃과 하층 식생들이 어우러져 생태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또한, 소나무 숲은 다양한 야생동물들의 서식처 역할도 한다. 숲 속을 거닐다 보면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곤충들의 움직임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이는 솔숲이 살아있는 생태계임을 증명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숲의 풍경 또한 다채롭게 변모하는데, 봄에는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이 드리우며, 가을에는 낙엽이 붉게 물들고, 겨울에는 설경이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모습을 선사한다. 특히 8~9월이면 소나무 아래 짙게 깔린 보라색의 맥문동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작가들에게는 아름다운 소나무와 고즈넉한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는 자연 학습과 힐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상오리 솔숲은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살아 숨 쉬는 자연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소나무들의 웅장함과 그 속에 깃든 선조들의 지혜,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꾸준한 보존 노력은 오늘날의 아름다운 솔숲을 만들어 냈다. 이곳은 지친 현대인에게는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고,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는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준다.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산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