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삶을 짓는 마음

2025-07-28     이선희 건축사·세움건축사사무소(충청남도건축사회)
이선희 건축사(사진=세움건축사사무소)

아침이 밝으면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작은 손을 잡고 등원시키고 나서야, 캐드 프로그램을 열고 일과를 시작한다.  그렇다. 나는 건축사이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건축사’라는 직함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우선 세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의 아내이며, 부모님의 딸이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많고, 그 모든 이름 사이에서 나는 매일 균형을 배우며 살아간다. 

건축에서 말하는 균형은 단순히 구조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 열림과 닫힘,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감각적으로 조율하고, 공간의 흐름을 읽으며 일상의 동선을 고려해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진짜 건축의 균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도 다르지 않다. 프로젝트와 육아 사이, 아내와 딸 사이, 건축사와 ‘나’ 사이. 그 사이사이를 채우고 조율하며 균형을 맞추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짓고 있는 가장 크고도 복잡한 구조물이다.

주택을 계획할 때면 건축주의 하루를 따라가며 그 안에서 살아갈 삶을 상상한다. 창 하나를 설계할 때도, 자재 하나를 고를 때도 그 공간 안에서 오갈 몸짓, 들릴 목소리, 흐를 감정을 떠올리는 일은 늘 즐거운 상상이고, 동시에 깊은 고민이다. 그러다 보면 문득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도면보다 아이의 그림이, 건축주 미팅보다 부모님과의 약속이, 프로젝트 일정보다 남편의 눈빛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땐 마음 한편이 죄책감으로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이 절묘하게 맞물리는 어느 날에는, 나는 다시 다짐한다. “균형.” 아이와의 대화, 남편과의 짧은 눈 맞춤, 부모님과의 조용한 대화를 통해 결핍된 마음과 관계를 온기로 채우는 일을 나는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균형을 배운다. 건축법만이 아닌, 공간을 함께 나눌 사람들의 감정을. 도면에 정해진 스케일만이 아닌, 인간적인 거리감을. 기한을 지키려는 책임만이 아닌, 숨 쉴 틈을 허락하는 여유를. 성능과 스펙만이 아닌, 그 공간이 주는 편안함을. 건축이 예술이자 기술이라면, 동시에 공감과 책임이라는 것을. 나는 실무 속에서, 그리고 삶 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이 글을 빌어, 저처럼 여러 이름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건축사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연대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는 모두, 도면 위에서 각자의 삶의 균형을 정성스레 설계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건축사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