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보이지 않는 일, 건축의 가장자리에서
몇 년간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계획과 공간 구성 업무만 담당하던 시절에는 실시도면 제작이나 인허가 절차를 신경 쓰지 않았다. 주어진 설계만 완성하면 그 다음 단계는 늘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러나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소규모 사무소를 차린 뒤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달랐다. 도면을 열기 전부터 ‘보이지 않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정작 설계를 시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침에 출근해 책상에 앉으면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허가 담당자의 연락을 받는다. 건축주와 일정 조율을 마친 뒤, 현장 담당자에게 보낼 공문도 작성해야 한다.
건축사의 일은 설계에만 집중해야 할 만큼 전문성이 요구된다. 하지만 소규모 사무소에서는 ‘설계 외 업무’가 설계 자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법령과 기준은 수시로 바뀌고, 건축주의 요구와 시공자의 입장 사이에서 중재자가 돼야 한다. 민원 처리자이자 상담가가 돼야 할 때도 있다. 건축사는 공간을 계획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정리·조율하며 그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다. 개별 프로젝트마다 허가 과정 전 단계에서 주고받는 이메일이 수십 통에 달한다. 담당자 교체가 잦으면 진행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고, 작은 서류 하나가 허가 여부를 갈라놓기도 한다. 경제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예산은 빠듯하고, 요구사항은 많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설계비’는 가장 먼저 줄어드는 항목이고, 설계 외 업무는 ‘서비스’로 취급된다.
하지만 이러한 보이지 않는 노동이 없다면 설계는 종이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과정은 수많은 조정과 판단이 누적된 경험을 필요로 하다. 건축물이 하나의 결과물로 완성되기까지 소규모 사무소의 건축사는 수많은 ‘틈’을 메워가며 프로젝트를 이어간다. 디지털 도구 역시도 업무 효율을 돕지만, 때로는 난관이 되기도 한다. 사용 프로그램의 설정 오류나 파일 호환 문제로 재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기술 지원 없이 스스로 해결하다 보면, 설계보다 프로그램 오류를 잡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는 날도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을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완공된 공간에서 건축주가 전해오는 감사 메시지를 보면, 지나온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다. 건축은 도면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의 벽을 넘고, 예산의 틈을 통과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야 비로소 완성된다.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하루는 조용하지만 분주하다. 그 안에는 법과 제도, 숫자와 감정, 공간과 시간이 겹겹이 얽혀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견뎌낸 건축주와의 신뢰가 모여, 작은 땅 위에서도 큰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에 띄지 않는 일상이지만 그 하루하루가 모여 결국 하나의 공간을 완성한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완성된 건축물이 곧 우리의 자부심이자, 건축이 지닌 진정한 가치일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틈을 찾아 채우며, 작지만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여정이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