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공공투자와 건축계 내수 경기, 그리고 지역 건축사사무소 살려야
동료 건축사의 이야기를 하나 나누며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는 몇 달 전 나에게 이렇게 털어놓은 바 있다.
“아침마다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오늘도 버틸 수 있을까, 내일은 더 나아질까, 아니면 이제 그만 문을 닫아야 하나….”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의 학교, 복지관, 주택, 골목마다 설계자로서 이름을 남기며, 보람과 자부심으로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리마저 낯설고 버거운 공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도 전국의 수많은 동료 건축사들이 같은 무게를 견디며 사무실 문을 열고 있는 현실이다.
건설 경기는 해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상황이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었고, 민간 주택 수요는 급감한 상태이다. 현장은 침체의 늪에 빠졌고, 그 충격파는 건설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전국 곳곳의 중소 건축사사무소들은 더 이상 물러설 여지가 없는 실정이다. 설계비는 덤핑 경쟁 속에 업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 비용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발주 물량조차 대형사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작은 사무소들에게는 매일을 버티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까움과 무력감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이다. 설계는 단순한 도면 작업이 아니라, 도시와 사람의 삶을 품어내는 일이자 내일의 안전과 희망을 짓는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설계시장에서는 그 숭고한 가치가 무너지고, 숫자와 덤핑, 생존이라는 단어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더 이상 이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분명하다.
지난 10여 년간 성장세를 이어오던 주택 시장은 급격한 금리 인상과 금융 규제의 벽 앞에서 멈춰선 상태이다. 신규 착공 물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 외 지방에서는 미분양 물량이 쌓이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의 건축사사무소들은 대형 프로젝트는커녕 공공 소규모 설계 물량조차 대형사무소에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 규제와 불공정한 발주 구조, 설계비 덤핑 속에서 하루하루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하는 동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역 경제의 한 축이 무너지고, 그 피해는 지역사회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고사 위기 중소형 건축계에 활력 불어넣을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 ‘건축사법’ 개정
새 정부 출범 맞춰 조속한 통과·시행 기대
정부·국회, 생존 위기 지역 건축계 숨통 틔울
‘설계대가 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할 때이다. 민간에만 의존하던 경기 진작책에서 벗어나, 공공 부문이 적극 투자에 나서야 한다. SOC 기반시설 확충, 공공주택과 공공임대주택 확대, 노후 건물 리모델링 지원 사업, 기존 건축물 내진보강 사업 등은 단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와 함께 장기적으로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드는 기반이 되는 정책이다. 최근에서야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확대가 논의되고 있으나, 그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지금은 과감하고 선제적인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공공 발주에서 지역 건축사사무소가 설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지자체의 공공건축, 리모델링, 시설관리 발주 시 일정 비율을 지역 업체에 우선 배정하거나 공동도급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형사무소에만 기회가 돌아가는 구조로는 지역 건축 생태계의 붕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짚어야 할 현안이 있다. 바로 ‘건축설계비 정상화’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설계시장은 지나치게 낮은 설계대가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그 결과 설계 품질이 저하되고, 이는 결국 부실시공과 안전 문제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다행히 최근 국회에는 ‘민간설계 대가기준 법제화’ 법안(의안번호 : 2206695, 제안일자 : 2024-12-19)이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법안은 하루빨리 통과돼야 하며, 이를 통해 적정한 설계대가를 보장하고 건축사들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설계시장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건축사는 도면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시와 사람들의 오늘과 내일을 설계하는 존재이다. 설계의 품격이 무너지면 도시는 붕괴되고, 국민의 안전도 위협받게 된다. 건축사사무소를 지키는 일은 업계의 생존을 넘어, 국민의 삶과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결국 핵심은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이다. 정부가 공공의 역할을 통해 경기를 선도하고,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켜야 한다. 내수 경기는 건설·건축산업이 살아야 회복될 수 있다. 지역의 중소 건축사사무소가 문을 닫고 나면, 그 생태계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장에서 오랜 세월을 버티며 느낀 점은 하나이다. 정책이 제때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 건설·건축산업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그 피해는 결국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
건설산업과 건축사들은 오늘도 묵묵히 일터를 지키고 있는 존재이다. 지역의 골목마다, 동네마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와 이웃들의 삶 속에서 설계와 시공을 통해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이제는 그 손을 잡아줄 때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인 건축과 건설이 살아야 국가의 미래도 살아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지금 이 순간, 새 정부와 국회가 지역 건축사사무소를 살리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데 있다. 국민 모두가 함께 꿈꿀 수 있는 안전하고 품격 있는 도시를 위해, 제도와 정책이 제자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