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과 견디는 것
어느 날 문득 나는 지금(껏) ‘버티고 있는가’ 아니면 ‘견디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힘든 상황이지만 기왕이면 견디고 있는 쪽을 택하고 싶다.
버티는 것은 갈 데까지 간 절망적인 한계 상황으로 몸이 뒤로 넘어간 꼴이고 견디는 것은 지금은 힘들지만 꾹 참고 이겨내는, 그래서 앞으로 다시 일어설 여지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황소가 아니라 한겨울 인동초처럼 그렇게 봄을 기다리며 견뎌내고 싶은 거다.
여기저기에서 경기가 안 좋고 힘들다고 난리들이다.
우리, 아니 나에게 언제 경기가 좋았던 적, 힘들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편한 공직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인 건축사 업을 시작한지 18년 동안 늘 그래왔다. IMF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 때보다도 건설, 건축 경기가 더 나쁘다.
그 당시 선배들은 “이제 밥숟갈 놔야겠다.” 고 했다. 나는 밥상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설거지 하는 꼴이 되었다고 응대했던 기억이 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그래도 내년에는 좀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갈수록 태산’ 이라고 점점 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으니…
12월 들어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이 각종 모임의 송년회가 줄줄이 찾아온다.
일은 없어도 몸은 바쁘다. 집에서는 돈을 기다리지만 갖고 들어가는 것은 술에 취한 내 몸뚱아리가 전부다.
아침에 집을 나서는 데 아파트 화단에 심어진 감나무 가지 끝에 붉은 감 한 개가 매달려 있다.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경비아저씨가 남겨둔 까치밥이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 저런 여유를 갖자” 마지막 잎새와 달리 단 한 개 남겨진 감이지만 외롭지 않고 어쩌면 누군가(까치?)를 위해 작으나마 희망을 주고 희생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마지막 잎새는 버티는 것으로, 감나무의 감은 견디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도 더 견뎌보기로 했다. 설사 떨어진다 해도 땅에서 다시 새싹으로 솟아나면 될 일이다.
또 한 해가 간다. 속는 셈 치고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져 본다.
송년모임 건배사에서 외치던 ‘대박’ 까지는 필요 없고 그저 쪽박이나 면했으면 좋겠다.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앞 날에 너무 큰 기대도 하지 말자’ 금 년 초 내 일기장 첫머리에 적어 놓은 글이다.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내심 ‘혹시나’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