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팀 참여해도 보상은 미비, 전문성 중심 선정 방식 논의 필요성 제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경쟁 과열 설계공모, 이대로 괜찮은가】 과열된 경쟁 속 다수 건축사 무보상 탈락 공모 의무화로 참여자 부담은 계속 ↑ 美 QBS(역량 기반 평가) 등 제도개선 논의 필요

2025-07-10     장영호 기자

건축사 업계에서 공공 설계공모 제도의 과열 경쟁 구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민간 부문 건축 발주가 위축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발주 물량이 유지되고 있는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다수의 건축사사무소가 몰리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선 외 참가자에게는 보상이나 피드백 없이 설계노동이 소모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현행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설계비 1억 원 이상 공공건축에 대해 설계공모를 의무화하고 있어, 이에 따른 참여자 수 증가와 경쟁률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공공 발주처는 개방형 경쟁구조를 통해 다양한 설계안을 확보하려는 목적을 설정해왔지만, 그에 따른 참여자 부담과 낙선에 따른 리스크는 대부분 건축사사무소에 전가되고 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공모에서는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서 100:1을 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계공모 결과는 대부분 1등 당선자만을 중심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나머지 응모안에 대한 보상은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경쟁을 통한 선정’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건축사의 기획력과 수행 역량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QBS(Qualifications-Based Selection)는 설계안을 제출받지 않고, 건축사의 역량과 실적, 과업 이해도를 기준으로 평가해 설계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QBS(자격 기반 선정) 제도를 통해 설계안을 요구하지 않고, 수행 실적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설계자를 선정한다. 선정 이후에는 발주기관과 보수 협상을 진행함으로써, 경쟁에 따른 가격 하락이나 무보상 참여를 차단하고 있다.

다만 QBS 방식은 실적 중심의 구조로 인해 신진건축사에게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일부 주에서는 ▲소규모 프로젝트를 분리해 발주하거나 ▲신진건축사가 대형사와 조인트벤처 형태로 QBS에 응모하도록 유도하는 방식 등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설계공모 제도의 목적과 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징성이나 디자인 실험성이 중요한 프로젝트는 현행 공모 구조를 유지하되, 일반적인 공공건축에는 ▲QBS ▲디자인-빌드 등 다양한 발주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 설계공모 의무 범위에 대한 유연한 적용과 병행 가능한 제도의 도입을 통해, 설계노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건축사의 역할 확장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 대형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지금의 설계공모는 수십 팀이 시간과 자원을 들이고도 당선 외에는 아무런 보상 없이 끝나는 구조로, 이는 국가적 낭비이기도 하다. 미국처럼 설계자의 역량과 이해도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QBS 같은 방식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신진 건축사사무소를 위한 보완책과 함께 제도 전환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공정한 방식으로 여겨졌던 설계공모가 오히려 건축사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로 고착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건축사는 “설계공모가 공정한 방식으로 여겨져 왔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참여자에게 과도한 역할과 책임을 요구하는 구조”라며 “비유하자면 한입 맛보고 판단하는 수준이어야 할 설계안이, 음식을 반 이상 먹어놓고 다른 식당이 더 맛있다며 요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상황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문학이나 미술처럼 낙선작이 별도의 자산으로 남는 것도 아니고, 건축은 해당 부지와 조건이 달라지면 설계안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좋은 작품을 고르기 위한 비교대안을 만드는 데 최소한의 보상이 있거나, 제출물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설계공모에 매달리는 신진건축사들이 허리띠만 졸라매다 결국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