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고 따뜻한 겨울의 추억, 김장

2013-12-01     방영아 요리연구가·마마스델리 대표

“엄마, 오늘 저녁엔 따뜻한 밥과 배추김치 주세요~”

아들은 귀엽고 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올해 여덟 살인 아들은 유난히 김치를 좋아한다. 깍두기나 오이소박이 같은 김치류도 잘 먹지만, 아이는 배추김치를 가장 좋아한다. 가끔 맨밥에 배추김치만 얹어서 먹을 정도로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나는 자주 김치를 담그고, 겨울이 시작되는 이즈음 늘 김장을 한다.

김장을 준비하면서 나는 늘 김치를 맛있게 담그시던 친정어머니의 솜씨를 닮은 것에 감사한다. 어머니는 겨울의 추위가 시작될 즈음 매년 김장을 하셨다. 11월 말이나 12월 초쯤 고소한 배추를 골라 소금에 절이고, 김장에 필요한 재료들을 분주히 준비하셨다. 푸른 겉잎은 싱싱하고 속대는 노릇하게 잘 익어서 묵직한 느낌이 드는 배추, 무청이 싱싱하게 달려 있는 새하얀 무, 매끈매끈 길쭉하게 생긴 대파와 쪽파, 김치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홍갓과 청갓, 향긋한 미나리, 모양도 재미있게 생겼던 청각,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자란 태양초 고춧가루 등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참 다양하고 많아서 김장을 하는 날은 무슨 잔칫날처럼 온 집안이 떠들썩하고 즐거웠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김치도 다양해서 어머니는 배추김치 외에도 동치미, 무섞박지, 갓김치, 파김치 등을 넉넉히 담그셨다.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시는 동안 아버지는 정원 한쪽에 묻어둔 항아리를 청소해 주셨고, 나무와 짚을 이용하여 항아리를 덮어줄 따뜻한 집도 만드셨다.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는 무채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맛있게 버무려서 배추 속을 넣으셨던 어머니의 손은 고춧가루 범벅이었지만, 곁에 앉아 있는 딸들에게 배추 속잎에 김치소를 넣고 둥글게 말아서 입에 넣어 주시면서 무척 행복해 하셨다. 어머니가 입에 넣어 주셨던 달큰하고 싱싱한 맛이 가득한 김장 김치를 생각하면 지금도 나의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진다.그렇게 김치와 온갖 음식에 정성을 쏟아 맛있는 요리들을 많이 만들어 주셨던 어머니 덕분에 나는 지금 요리 연구가가 되어 어머니처럼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하고 있다.

요즘은 가정에서 김치를 담그지 않고 시중에서 파는 김치를 간편하게 사먹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또 절인 배추를 소량씩 구입하여 간편하게 김치를 담글 수도 있으니 세상이 참 편리해진 느낌이다. 인구 구조와 가구 구성의 질적 변화, 경쟁적인 사회구조는 음식 문화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트나 백화점 식품관, 시장의 반찬 코너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김치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가족의 따뜻한 정과 추억이 담긴 김치의 맛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김치는 맛 이전에 가족의 정과 협동, 웃음이 배어 있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한 겨울의 행사처럼 느껴졌던 김장이 나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나도 내 아이에게 이 소중한 기억을 오래도록 가질 수 있도록 매년 맛있는 김치를 담그고 있다. 한편으로는 건강을 위해 매운맛과 짠맛을 줄이면서도 신선하고 맛있는 김치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치는 발효음식으로서 세계인의 식탁에 올라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식품이지만 나트륨 함량이 지나치게 높다. 김치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나트륨을 줄이는 노력은 김치의 세계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요리연구가로서 보통사람들이 좀 더 건강하고 맛있는 김치를 쉽고 즐겁게 담글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김치를 만드는 것은 내 중요한 일 중의 하나다. 올해 김장에는 가족과 함께 또 어떤 김치를 맛있게 담글까 하고 즐거운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