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건축의 현실과 학교 교육의 중요성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의 작품들을 보았다. 다양한 시각의 방법론과 사이트 분석, 건축적인 콘셉트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과정과 결과물의 모습은 유명 건축사들이 만든 건축물만큼이나 훌륭했다. 하지만 많은 모형들을 보면서 실현 가능한 건물인가 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다.
현실에서 건축은 건축사 개인의 결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건축법이라는 공동의 규칙 아래 있어야만 한다. 설계공모에 대한 공정성은 여전히 논의 중이며, 인허가를 위한 행정 처리도 항상 합리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건축주나 발주처가 건축사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반영하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축사가 가졌던 가치와 철학은 실현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업을 가져올 수 있는 영업력과 사업성을 판단하는 경제적인 시야가 없으면, 건축 디자인이나 철학적 고민은 시작도 해볼 수 없다. 이외에도 건축주를 설득시키는 능력, 사람 간의 관계를 풀어가는 능력, 시공에 대한 지식 등 필요한 지식과 역량이 너무 많다.
건축에 대한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 디자인만 강조하던 교육체계 속에서 건축을 배우고, 대형 회사에서 설계공모 업무를 주로 하다가 사무소를 개소하고 보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최우선순위에 놓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을 시작한 후 뒤늦게 부족한 능력들을 꾸준히 채워가는 중이다.
대학교가 직업훈련소처럼 도면 그리는 법이나 실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축의 이론과 철학, 디자인의 당위성 등을 고민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건축계는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설계 공모의 공정성, 민간설계 대가 마련, 인허가 부조리, 다른 기술사들과의 업무 관계 등 다양한 고민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들을 시스템이나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고 연구하는 곳은 많지 않다.
또한, 업계에서 문제 되고 있는 일이나 실무에서 필요한 능력에 대해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고민을 유도하는 학교도 없는 것 같다. 현재 협회에서 여러 이슈들에 대해 건축사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지만, 실무자 외에 관련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이러한 고민을 함께해야 미래에라도 사회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아직도 종합병원과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이 지난 정부와의 마찰로 인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본인들의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는 부러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