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작정 도전만 하기엔 어려운 신진건축사의 현실
2025년 1월, 대학을 졸업한 지 아홉 해 만에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경력과 서투른 감각, 미완의 표현력은 개소 직전까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동시에 내 건축을 스스로 찾아보고 싶다는 조바심이 자꾸만 밀려왔다.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드물었다. 과연 좋은 시기란 존재할까? 그런 의문 속에서 개소를 결심했다. 명함을 디자인하고, 나만의 레이어 목록을 만들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많이 읽었다. 예전에 근무하던 사무소의 건축사님들도 시작은 막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개소 전부터 줄곧 고민해오던 현실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아마 개소를 준비하는 대부분의 건축사가 겪는 첫 번째 고민일 것이다. 당연히 건축설계를 중심에 두고 싶지만, 지인으로부터 받는 일을 제외하면 민간 계약 건은 사실상 전무했다. 포트폴리오가 부족하기에 지인들에게조차 자신 있게 맡겨달라고 말하기가 쉽지가 않다.
지정감리나 업무대행, 용도변경 같은 지자체 관련 업무들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건축에 대한 꿈’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이런 업무들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 오히려 그러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맡게 된다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수의계약이나 입찰도 마찬가지다. 경력이 거의 없는 입장에서는 건축사 명함 한 장만으로 쉽지 않은 일이 많았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설계공모였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꾸준히 도전해 2년 안에 당선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첫 도전은 설계비 1억 원대의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모였다. 준비 과정에서는 ‘이런 규모는 큰 사무소들이 참여하지 않겠지’, ‘작은 규모면 설계 난도가 낮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몇 번이고 도전하겠다고 마음먹고 내디딘 첫발이었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편에 두려움이 있었다. 참여한 설계공모에는 150여 팀이 신청했고, 29팀이 최종 제출하는 등 예상보다 경쟁이 훨씬 치열했다. 물론, 좋은 안을 고르기 위해 공모만큼 투명하고 효과적인 방식은 없기에 필요한 경쟁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과정이 과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1등을 제외하고는 전원 탈락하는 구조 속에서, 28개의 낙선 안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참여한 사무소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너무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공모 참여는 분명 설레는 일이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건축사에게는 등용문 같은 존재다. 마치 학생 시절, 신학기를 맞아 첫 스튜디오 수업에 들어갈 때의 기분처럼 응모신청서를 제출할 때면 두근거린다. 공모 안을 낼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을 사는 것처럼 설레기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과도한 경쟁 속에서 낙선이 반복될 때, 과연 그때도 마음이 꺾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도 따라온다.
하지만 신진 건축사에게는 무작정 도전만 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적 이유들이 산재해 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번지점프 줄처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우리는 날아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안전하게 지상으로 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많은 꿈을 품은 이들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많은 도전을 시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완충 장치가 마련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