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글쎄요… 감이 잘 안 와요” 라는 말 앞에서

2025-06-10     이영미 건축사·(주)에이라우드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영미 건축사(사진=주.에이라우드 건축사사무소)

설계안을 마무리하며 클라이언트를 만날 준비를 하던 밤. 도면을 밤새 다듬고, 조감도까지 정리해 마주했다. ‘이번엔 충분히 설명했으니 괜찮겠지.’ 마음을 다잡고 다음 설명을 시작하려는 찰나, 익숙한 한마디가 나온다. “글쎄요... 감이 잘 안 와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요?”
“요즘엔 이런 게 트렌드인가요? 건축사님이 전문가잖아요. 전문가 생각은 어떠세요?” 이럴 때마다 묘한 감정이 든다.

전문가의 의견을 묻지만, 정작 판단은 결국 본인의 ‘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도면 위에 펼쳐진 치수와 논리, 콘셉트와 계획은 그 한마디 앞에 멈칫한다.

사실 건축은 시작부터 타협의 연속이다. 대지는 늘 제한되어 있고, 건축주의 요구는 생각보다 많고 디테일하다. 방은 하나 더 있어야 하고, 창은 커야 하며, 천장은 높고, 마당은 남향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에, 우리는 늘 무언가를 포기하고, 무언가를 얻는다. 우선순위를 조율하고, 그 결과를 도면에 담는다. 그렇게 설계한 내용도, 막상 “감이 안 온다”는 말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한 번은 근린생활시설 설계 중, 모든 조건을 맞춰낸 끝에 클라이언트를 만났지만 돌아온 말은 이랬다. “뭔가 느낌이 안 와요. 임팩트가 없달까…”
근거는 이미 충분했지만, 감각이라는 이름 앞에 모든 게 흔들렸다. 이럴 때 설계는 더 이상 도면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공간에 담길 분위기까지 미리 짐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건축사의 직관이 중요해진다. 도면 너머의 기류를 읽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정서를 포착하는 능력. 때로는 감각이라는 불확실한 영역을 가장 현실적인 언어로 옮겨야 한다. 현장에서 그 차이는 더 뚜렷하다. 

도면을 볼 땐 “괜찮다”라고 했던 공간이, 벽이 올라간 순간 “생각보다 너무 좁은 거 아니냐”는 말로 바뀐다. 마감재도 조명도 없는 텅 빈 공간 앞에서 사람들은 불완전한 감각으로 판단하고, 때로는 불안을 드러낸다. 그래서 건축사는 단순한 설계자가 아니라, 해석자이자 번역자다. 수치와 선으로 감각을 상상하게 하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까지 설계에 담아야 한다. 

우리는 매일 도면을 그리지만, 사실은 사람의 감각과 마음에 닿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건축은 눈으로만 짓는 게 아니라, 결국은 사람의 삶을, 감정을, 시간을 짓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