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통건축 설계와 유산 복원에 매진해 온 장순용 건축사 “좋은 작품 나오고 있는 전통건축…국가유산 보호 인식과 저변도 나아지길”
전통건축 복원에 천착해 온 장순용 건축사의 기록과 실천 궁궐 벽지에서 과거시험 답안지 흔적 찾아내고 경주 임해전지부터 수원 화성행궁까지 복원 설계 평생 모은 실측도와 및 도서 1만 3천여 점 기증 묵묵히 한길 걸으며 시대의 흔적 다시 세워
“우리는 지형을 바꾸지 않습니다. 지형을 조금 손보는 정도이지요. 대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옛 건물 속에서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고심했는지 그 흔적을 찾기 위해 고민합니다. 건물에 남아 있는 그 시대의 고민은 현재까지도 이어진다고 봅니다. 옛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을 찾아낸다는 점에서 전통건축 설계가 지닌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이어진 현재, 그 안에서 우리의 장소성을 고민해 온 건축사가 있다. 오랜 시간 전통건축 설계를 맡아 온 장순용 건축사(삼아성건축사사무소)의 이야기다. 1985년부터 설계를 시작해 지금에 이른 장순용 건축사에게, 전통건축은 어떤 의미일까.
“전통건축은 설계를 추리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듯한 즐거움도 있죠. 경주 임해전지(臨海殿址)의 복원설계를 맡았을 때가 그랬습니다. 임해전지는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 터로, 안압지 발굴조사 이후 초석 위에 남은 건물의 복원설계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고민은 ‘어떻게 신라시대 건축양식을 추리할 것인가’였습니다. 남아 있는 자료는 빈약했고, 백제 건축양식과는 차이가 있어 누구도 정답을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고심 끝에 통일신라 이후의 건축양식을 토대로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설계 논리를 세웠습니다. 신라의 곡선을 구현하고 부재를 결정하기 위해, 시기별 유사한 건물을 비교·검토하는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한국 건축사(建築史)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던 시기, 비어 있는 건축양식을 찾아가는 장 건축사의 설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황룡사 9층탑 복원, 제2의 석굴암 등은 경주 관광 개발 시기에 맞춰 진행된 프로젝트였다. 비록 당시 문화재관리국 심의를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국가유산 복원에 대한 시대적·사회적 화두를 던졌다.
“국가유산 설계를 할수록, 본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존·보수하는 방향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원화성 축조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를 바탕으로 복원설계를 진행한 수원 화성행궁 복원사업은 의미가 깊습니다. 의궤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재미가 있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이 기록한 의궤대로 지금의 우리가 왜 못하겠느냐’는 마음도 있었고요. 흐트러진 퍼즐을 다시 맞추는 재미도 컸습니다. 의궤에 따라 복원하려는 모두의 노력이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순용 건축사의 이러한 관심 덕분에, 당시 주목받지 않았던 궁궐 도배지에 대한 연구가 이어질 수 있었다. 장 건축사는 운현궁 실측 조사 당시, 두껍게 남아 있던 조선 왕실의 도배지를 발견했다.
“운현궁 실측 조사 당시, 실제로 그곳을 가정집으로 사용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기존 구조를 손대지 않고 도배만 새로 한 뒤 거주하고 있었죠. 조선시대 상류주택이던 운현궁은 고종 즉위 이후 그 영역이 크게 확장됐습니다. 이 시기부터 궁궐 기술자가 궁궐 재료를 조달해, 궁궐건축과 동일한 방식으로 운현궁이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벽지에 왕실 도배지가 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습니다.”
장순용 건축사가 채취한 도배지를 통해, 궁궐 벽지의 초배(初褙)에 불합격한 과거시험 답안지가 사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과거시험 답안지는 수험생이 직접 준비해야 했고, 고급 종이를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시험지로 벽을 초배한 뒤, 그 위에 한지를 재배하고 마지막에 도배지를 덧바르는 방식이 실제로 쓰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며 대대적인 정비를 진행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궁궐 벽지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상당수의 도배지가 폐기됐습니다. 최근 들어 궁궐 벽지의 가치가 주목받으며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때 버려진 도배지를 떠올리면 지금도 매우 아쉽습니다.”
장순용 건축사는 지난 2016년, 오랜 실무 과정에서 축적한 자료 1만 3천여 점을 한양대학교에 기증했다. 이는 장 건축사가 수행한 건축문화재 설계업무 관련 자료로, 도면 5,752건, 사진첩 및 실측장 1,697건, 설계업무 관련 서류 488건, 도서류 2,215권 등이다. 특히 1990년대까지의 자료는 국내 유일본으로, 업무 수행 전반의 현장 실측, 도면 작업, 보고서 작성 등의 과정이 포함돼 자료의 완결성과 학술적 가치가 높다.
“일생을 함께해 온 자료를 보낼 때는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설계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에서도 기증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모두가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 곳이 더 낫다고 판단해 고심 끝에 학교에 기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순용 건축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예전보다 전통건축을 하는 건축사의 수가 늘어나면서, 전통건축과 퓨전한옥 등에서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작품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국가유산 보호에 대한 인식과 저변도 함께 확산되길 바랍니다. 최근 대형 산불로 국가유산이 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국가유산을 보다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의 시각에서 바라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