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술진흥법상 토목공사 가설구조물 설계 책임 확대 논란] “시공자 책임을 설계에 전가”…건설엔지니어링업계 강력 반발

‘건설공사의 설계도서 작성기준’ 개정, 예고 없이 시행 건설엔지니어링업계 “가설사고 책임까지 전가될 것” 건축사업계 직접 대상은 아니지만, 유사 입법 흐름 반복에 주의 필요

2025-06-02     장영호 기자

국토교통부가 건설기술진흥법48조에 따라 제정한 건설공사의 설계도서 작성기준이 지난해 12월 개정되면서, 건설엔지니어링업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개정은 토목공사 가설구조물에 대한 구조검토를 설계단계에서 광범위하게 의무화한 것이 핵심으로, 시공자의 안전 책임까지 토목공사 설계 업무 수행자에게 전가하는 구조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토목구조기술사회는 최근 공문을 통해 예고 없이 기습 개정된 이번 고시는 가설공사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이 설계도서 작성자에게 집중될 수 있어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개정된 ‘1.5 가설구조물 구조검토항목은 기존에 일부 고위험 구조물만을 대상으로 하던 구조검토 범위를 삭제하고, ‘모든 구조물(가설 포함)’에 대한 구조검토를 의무화했다. 국토교통부 고시에 따라,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는 가시설 설계기준(KDS 21 00 00)’가설공사 표준시방서(KCS 21 00 00)’까지 준수해야 한다. 기존에는 높이 31m 이상 비계 5m 이상 거푸집 및 동바리 공용 가설교량 흙막이 지보공 등에 국한됐지만, 개정안은 특정 기준 없이 의무 범위를 확대하면서, 시공 여건과 무관한 과도한 설계 책임을 요구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토목구조기술사회는 건설기술진흥법상 설계자는 시공 전 단계에서 현장 조건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구조검토를 하게 되며, 사고 발생 시 민형사상 책임까지 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 건의 사고로도 영업정지 처분이 가능하고, 부실설계자로 지목될 경우 해당 기술인력은 산업 현장에서 사실상 퇴출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기술사회는 설계를 기피하는 기술인이 증가하면서 기술 기반 자체가 붕괴되고, 국내 건설엔지니어링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소멸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공사 설계도서 작성기준건설기술진흥법 시행규칙40(설계도서의 작성) 2항에 따른 것으로, 공공공사를 수행하는 각 발주청에서 발주되는 토목공사중 도로(교량·터널 포함), 철도(교량·터널 포함), 지하철(교량·터널 포함), 공항, , 하천, 항만공사의 건설엔지니어링사업 수행에 적용한다.

직접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건축사 업계도 이번 사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2년 전후 추진된 건설안전특별법(건안법)’ 제정 논의에서는 건축사에게 시공 중 안전난간, 추락방지망 등의 설치 계획과 비용 산정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건축물의 설계를 책임지는 건축사 업계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이번 고시 개정 역시 설계 단계에 안전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기술사회는 가설은 시공자의 권한이자 책임이며, 시공자는 현장 여건과 예산을 고려해 최적의 공법을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은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맞지 않으며, 향후 국제적 기술경쟁력도 저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설계도서 작성기준은 고시일 뿐이라 가볍게 여길 수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 해당 조항이 적용되면 그 파급력은 법령 수준이라며, 한국엔지니어링협회 등 유관단체의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