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변화의 중심에서 건축사의 역할

2025-05-23     이용환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생활공간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이용환 건축사(사진=건축사사무소 생활공간)

오늘날 우리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건축업계에 입문해 실무를 경험하고, 건축사로서 역량을 쌓아가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건축을 둘러싼 환경은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의 눈부신 발전, 급변하는 사회 구조, 인문학적 사유의 확장,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등 혁신적 도구의 등장과 같은 변화의 흐름은 건축 분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변화의 속도와 폭은 기존 건축계의 대응 방식과 건축 문화 전반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창조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삶이라는 다층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사회·문화·기술·예술·법과 제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에 건축이 있다. 건축의 여정은 인간과 공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시작된다. 대지와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에 대한 고민은 건축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이를 현실의 공간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설계, 시공, 복잡한 법규와 인허가, 행정 기관과의 협력, 현장의 기술자 등 다양한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처럼 다층적인 협력 구조와 전문성이 요구되는 건축의 특성상,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와 혁신의 속도를 건축계 전체가 따라가기란 쉽지 않다.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설계와 시공 방식을 혁신하고 있지만, 실제 건축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변화하는 법규, 늘어나는 행정 절차, 현장의 물리적 한계 등 변화의 속도가 서로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건축사의 역할은 더욱 확장되고 중요해지고 있다. 건축사는 단순히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전문성을 융합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사회적 요구와 기술적 혁신을 건축 공간 속에 창의적으로 통합하는 핵심 통합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전통적 건축 가치와 현대 사회의 요구, 기능과 예술, 법적 규제와 창의적 실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나가는 것이 오늘날 건축사에게 주어진 핵심 과제다.

변화의 중심에 선 건축사는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현재의 변화를 인식하고, 미래 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인간을 위한 공간 창조라는 건축 본연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진화하는 기술과 다변화하는 사회, 심각해지는 환경 문제에 열린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다양한 분야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건축을 모색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건축사의 가치와 미래를 향한 도전을 위해 건축계 내부와 외부의 오랜 불합리한 관행과 구조를 개선하고, 모든 건축사가 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정당하게 평가받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투명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한 환경은 건축사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적 시도를 장려하고, 궁극적으로는 건축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통해 더욱 풍요롭고 안전하며 아름다운 사회를 건설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새로운 건축 문화는 건축사 개개인의 전문성 함양 노력과 더불어, 전문가로서의 건축사를 존중하고 그 노력에 합당한 대가와 사회적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성숙한 환경, 그리고 건축사의 능력과 전문성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건축계 스스로의 자정 활동을 통해 비로소 만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