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협업의 시대, 건축사는 왜 고립 되는가
현재 건축사들의 약 40%는 1인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신입 건축사 대부분은 홀로 사무소 운영을 시작한다.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거창한 철학이나 대단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람에 대한 믿음의 부재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 두 가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프로젝트의 수익은 일정하지 않고 정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어떤 경우에는 끝내 미수로 남기도 한다. 그런데 직원을 고용하면 급여와 4대 보험, 퇴직금 등 많은 유지비가 따라온다. 게다가 이 직원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결국 ‘내가 혼자서 책임질 수 있는 만큼만 벌자’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곧 이 방식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지, 혼자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1인 건축사사무소가 안고 있는 과제는 분명하다. 첫째는 인력난이다. 전문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규모 사무소일수록 그 어려움이 크다. 신입을 채용하려면 교육비와 이직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므로 대부분 경력자를 선호한다. 그러나 경력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현실은 경력을 요구하는 업무만 많아질 뿐, 정작 경력을 쌓을 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신입은 채용할 수 없고 경력자는 구할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심지어 몇 안 남은 경력자들은 곧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할 예정이다.
둘째는 업무영역의 한계다. 1인 사무소는 자연스럽게 수주 가능한 업무가 제한된다.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는 애초에 조건 자체를 충족하기가 어렵다. 입찰요건에 일정 경력을 갖춘 인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건축물 관리점검이나 해체감리 등 법적으로 단독수행이 불가능한 업무는 계속 늘어난다. 결국 설계역량과는 무관하게 진입 자체가 막히는 시스템이다. 혼자서는 진행이 어려운 규제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맞는 대안은 마련돼 있지 않다.
셋째는 협업 시스템의 부재이다. 변화하는 건축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개별 사무소가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현재는 건축사사무소 간의 협업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한 건축사의 명의 아래 여러 명이 실무를 분담하는 비공식적인 방식이 이뤄지고 있으나 그 책임이 불분명하다.
이제는 현실에 맞는 변화가 필요하다. 각자의 사무소를 유지하면서 공식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역할을 나누고 책임을 공유할 수 있다. 그게 가능해지면 지금처럼 경쟁만 반복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의 전문성과 경험을 살릴 수 있다. 또한 연대의 기반 위에서 신입도 보다 안정적으로 유입될 수 있다. 하나의 사무소가 아닌 연합된 체계 속에서는 더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단순한 제안이 아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변화다. 현실에 맞는 협업의 길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