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 변은영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더문), 2024 강원도 건축문화상 주거부문 우수상 수상작 ‘서와정(徐臥情)’
천천히 쉬어가는 집, 고즈넉한 강릉 숙소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옥 쉼터 다른 높이의 벽이 어우러진 입체적 공간 구성
해마다 전국 각 지역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주거부문 우수상 수상작 ‘서와정(徐臥情)’(변은영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더문, 강원특별자치도건축사회)이다.
202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은 ‘쉼(休)’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이 시대의 쉼은 단순히 멈춰 숨을 고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쉬는 시간은 지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복잡한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면, 어딘가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서와정(徐臥情)’은 그런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강릉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한 이 건축물은, 우리네 한옥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말 그대로 ‘제대로 쉬기 위해’ 지어졌다. 이름에도 그 의미가 잘 녹아 있다. ‘서와정’은 ‘천천히(徐), 누워(臥), 마음을 품는다(情)’는 뜻을 담고 있다. 건축주는 이름을 짓게 된 사연을 묻자 “수많은 이름을 떠올리던 어느 날, 지친 일상 속에서 ‘그냥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고 웃으며 말했다.
설계자 변은영 건축사는 이러한 생각을 설계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자 했다. 한옥 특유의 툇마루와 나무 기둥을 활용해 외관에서는 편안하고 고즈넉한 ‘서와정’만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실외에는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며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쌓였던 피로를 풀 수 있도록 배려했다. ‘ㄱ’자 형태의 내부에는 다도(茶道)를 즐길 수 있는 공간과 자쿠지(기포가 나오는 온수 욕조) 공간도 갖춰져 있다.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마치 옛 궁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기와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마치 시간 여행을 온 듯, 옛 정취에 빠져든다.
이처럼 건축주와 설계자의 뜻이 잘 어우러져, 전통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촌스럽지 않은 따뜻하고 고운 공간이 탄생했다.
다음은 설계자 변은영 건축사와 건축주 서와정 최성희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변은영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설계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용하지 않던 오래된 주택을 고쳐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싶다는 건축주의 요청으로 처음 포남동을 찾게 됐습니다. 강릉은 그동안 바닷가만 찾아봤던 터라, 주택가 특유의 조용한 분위기와 주민들의 일상은 무척 낯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죠. 덕분에 관광지와는 또 다른, 강릉의 진짜 정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 주택은 매우 낡고 훼손이 심해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구조의 뼈대만 남기고 현대적인 해석을 더해 새롭게 구성한 프로젝트입니다. 옛 건물이 지닌 시간의 흔적을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생활 방식에 어울리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Q. 그 지향점을 실제로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의미 있는 기존 구조물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부분은 현대적인 요소로 자연스럽게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한옥 특유의 목구조에서 느껴지는 미감을 현대적인 선과 재료를 통해 풀어내려 했고요. 공간 구성에서는 개방성과 사적인 아늑함이 공존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전통을 단순히 재현하기보다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기존 건물을 재구성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신축보다 훨씬 더 많은 조정과 협의가 필요했습니다. 법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건축주, 시공자, 허가권자와 지속 협력하며 의견을 조율해야 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설계 방향을 여러 차례 다시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며 가지게 된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늘 건축주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합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결국,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주는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그 방식이 공간 안에 잘 담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건축의 역할입니다. 단순히 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가 지닌 시간성과 사람들의 삶을 존중하며 설계하고자 합니다.
Q. 그 지향점이 이번 프로젝트에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와정’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공간을 통해, 사용자들이 편안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런 점에서 제 건축적 지향점이 비교적 잘 반영된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서와정’을 통해 시도한 ‘기억과 현대성의 공존’이라는 의도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쉽지 않았던 조율과 협력의 과정을 건축주, 시공자, 허가권자와 함께 이겨냈고, 그 결과물이 인정받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습니다.
Q.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나 설계에 적용해보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요?
저는 공간 안에서 시간이 흐르는 감각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건축을 단순한 기능적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매개로 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재료의 질감이나 공간을 나누는 경계의 디테일 같은 요소들을 더 섬세하게 다뤄보고 싶습니다.
건축주 서와정 최성희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서와정(徐臥情)’을 처음 지으려던 의도와 목적이 있었나요?
특별한 의도라기보다는, 오래전부터 궁궐을 답사하거나 전통 건축을 둘러보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특히 가지런히 이어진 전통 기와지붕과 둥그스름한 지붕 능선을 바라볼 때면 마음이 참 편안해졌어요. 언젠가는 그런 집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습니다.
Q. ‘서와정’이라는 이름의 의미와 그 사연은요?
수많은 이름을 떠올리며 고민하던 어느 날, 저는 개인적으로 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조금 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문득, 저처럼 지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이곳에서만큼은 편히 쉬어가고, 위로받고, 다시 현실로 돌아갈 힘을 얻어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즐거운 여행이든, 도망치듯 벗어난 현실이든, 누구든 이곳에서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편히 쉬다 가길 바랐습니다. 그런 바람을 담아 ‘천천히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서와정’이라 이름 붙이게 됐습니다.
Q. 설계에는 만족하셨는지요?
정말 모든 면에서 만족합니다.
Q. 지금은 의도하신 대로 공간이 활용되고 있나요?
처음 의도했던 것보다 더 큰 위로와 보답을 받고 있어, 참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가끔 다녀가신 분들이 남겨주신 따뜻한 글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질 때도 있어요.
Q. 앞으로 이 공간이 어떤 곳으로 자리 잡아가길 바라시나요?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고, 때로는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어드릴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랍니다.
처음의 그 마음처럼, 선하고 좋은 영향력을 전하는 ‘천천히 쉬어가는 서와정’으로 계속 이어져가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