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칼럼】 건축 분야 그림자 규제 해결을 위한 노력과 과제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였다. 김영삼 정부의 ‘규제실명제’, 김대중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 철폐’, 노무현 정부의 ‘덩어리 규제 개선’, 이명박 정부의 ‘투자 걸림돌 규제 폐지’, 박근혜 정부의 ‘규제 기요틴’, 문재인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킬러 규제 혁파’ 등이 대표적이다. 모든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없애고, 혁신적 사업에 대한 규제는 완화하려 노력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곳곳에는 여전히 법령 밖에서 작동하는 건축 분야의 그림자 규제가 존재한다.
그림자 규제란 법령에 명시된 근거 없이 시행되는 규제를 말하며, ‘임의 규제’라고도 불린다. 예컨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실무부서 국장 등의 내부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절차나 기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예측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관계법령이나 지방자치단체 조례, 규칙 등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나 기업은 사전에 이를 알기 어렵다. 건축설계를 마치고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야 비로소 행정 담당자가 해당 지침이나 기준의 존재를 밝히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뒤늦게 확인된 임의 규제는 건축설계 수정, 심의 및 인허가의 재진행 등 불필요한 절차를 수반한다. 이로 인해 사업 일정이 지연되고 각종 부대비용과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사업비 전체가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시간적·경제적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기업이 감당하게 된다.
건축 임의 규제는 단순히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임의 규제가 지방자치단체 전체에 적용될 경우, 이는 해당 지역의 모든 건축사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결과적으로 건축산업계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실 산하의 국책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은 2022년 ‘건축규제혁신센터’를 출범하여 건축 분야 규제 개선에 힘쓰고 있다. 건축규제혁신센터는 건축법령에 대한 사후 입법영향분석, 지자체 건축법규 모니터링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제안하고, 지역 내 숨겨진 임의 규제를 발굴·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 중에서 임의 규제를 발굴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과제다. 일반 국민 또는 건축사의 신고를 통해 지역 내 일부 임의 규제를 확인하고 개선 방안을 도출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신고 자체가 쉽지 않다. 지자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합리한 규제를 경험한 사람들조차 문제 제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또한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빠 관련 증빙서류를 갖추어 임의 규제를 신고하는 일도 쉽지 않다.
건축설계·인허가 단계서 드러나는 그림자 규제
사업 지연과 비용 부담 초래
국토부·건축규제혁신센터, 권역별 간담회 통해
임의 규제 발굴·개선 나서
올해 건축규제혁신센터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임의 규제 발굴 방식을 다각화하였다. 수동적으로 신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선 현장에서 논의되어 온 대표적인 임의 규제를 주제로 삼아 지역별 사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4∼5월에는 국토교통부, 대한건축사협회와 협력하여 권역별 건축사 간담회를 열고,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계획이다. 수집된 사례와 개선 과제는 국토교통부에 규제 개선 안건으로 제출하여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지도록 할 예정이다.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비상경보장치가 작동하듯, 건축 분야의 그림자 규제 발생 역시 건축법령 시스템에 ‘경보’가 울린 것과 같다. 이는 곧 법령이나 지자체 조례·기준 등의 운영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림자 규제는 ‘소리 없는 경보’와 같아 쉽게 인지하기 어렵다. 누군가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고 알리지 않으면 대응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작은 불씨로 시작하더라도 즉각 대응하지 않으면 화재가 확산하고 피해가 연쇄적으로 늘어나듯, 건축법령에 대한 ‘비상경보’인 그림자 규제를 간과하면 그 피해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건축 분야의 그림자 규제에 신속히 대응하려면 모든 관계 주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지역에서 건축 임의 규제를 확인한 일반 국민 또는 건축실무자는 이를 적극적으로 공유하여야 한다. 또한 국토교통부나 국책연구기관은 발굴된 임의 규제를 검토하여 법령 정비나 지자체 제도 개선 조치 등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모든 관계 주체가 협력할 때 비로소 매년 1∼2개씩의 그림자 규제라도 실질적인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