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효 건축사의 ‘다시 책으로’ 09] 설계자 관점에서 서술한 한국고건축의 실체,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
필자의 세대에게는 한국(고)건축의 수업교재로서 고려대 주남철 교수의 『한국건축의장』이 바이블과 같은 책이었지만, 근래에는 故 김도경 교수의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이 교재로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한국건축의 양식과 의장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전통)시공기술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서술된 책이다.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사진자료와 실측도면들로 구성된 이 책은 『한국건축의장』의 최신버전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칭했던 부재의 명칭에 대해서도 저자 스스로 새롭게 교정을 시도한다.
목조구조가 갖는 결구방식을 저자가 직접 촬영한 시공 사진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설계자에게 전달하는 현장감도 훨씬 좋다. 실제로 저자는 전통목조건축 시공현장에서 연구하는 실무형 학자였다.
필자에게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제작(설계 또는 시공)자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점이다. 목차의 구성도 한옥과 목조건축의 공정대로 구성하고 있으며, 고건축을 디자인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부분이 흥미롭다. 이전 교재들에서 건축부재들을 설명하는 구조도가 분해도였다면, 이 책에서 설명하는 방식은 설계도 또는 제작설치도(shop drawing)와 같은 인상을 받는다.
구체적인 예로, 지붕의 비례를 조정하는 변작법(142p)과 ‘공포’를 양식(樣式)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의장적인 기능으로서 건물높이와 시각적인 효과로 설명하는 부분(185p)은 과거 사전(辭典)적인 교재에서는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은 한국건축의 역사보다는‘실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어느 대학이든 건축과의 필수 교과과정임에도 한국(고)건축을 현대의 한국건축에 직접적인 적용하기보다는 ‘자연친화’, ‘인간중심’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으로 이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친화라는 개념은 한국건축만 추구해온 가치가 아니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지역의 건축문화가 지향해온 바이다.
필자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자연친화와 인간중심’이라는 개념은 한국건축의 가치를 드러내는 키워드가 아니라 한국건축에 대한 건강한 토론과 담론을 방해하는 키워드이다. 이렇게 한국건축의 가치가 ‘자연친화’ 개념처럼 단순화되고 신비화되는 것은 한국건축 ‘실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비유하면, ‘공포’와 ‘익공’을 구분하지 못하면서 ‘자연과의 조화’라는 광의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체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건축을 차용할 때마다, 매번 ‘한국건축의 현대화’, ‘한국성’이라는 애국신념 또는 국뽕으로 미끄러지게 되는 것 같다.
한국건축에서 ‘자연친화’라는 개념은 결론이 아니라 ‘어떻게 구현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고건축의 실체를, 게다가 설계자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갖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부재의 정확한 이름을 모르더라도 ‘이것’과 ‘저것’이 다름을 알아볼 수 있고, 디자인을 위한 레퍼런스를 잘(?) 고를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꽂이에서 이 책을 볼 때마다 저자 김도경 교수님이 이른 나이로 돌아가신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