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나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

2025-04-22     성무석 건축사·무유림 건축사사무소 (경상남도건축사회)

 

성무석 건축사(사진=성무석 건축사)

필자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지 4년 차, 신진 건축사이다. 업무의 대부분은 경쟁률 수십 대 일의 공모전에 매달려 설계안을 계획하고, 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도시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상상력은 넘쳐나지만, 그 결과물은 대부분 심사위원의 시선을 끌다 사라지는 ‘가능성의 구조물’ 정도로 남는다.

'나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

필자의 일은 점점 ‘디지털 크리에이터’와 닮아가고 있다. 과거, 건축에 대한 인식은 설계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실제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일이었다면, 지금 필자가 하는 건축은 초기 구상에만 머무르고 이후의 과정에 닿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작업물은 실재하지 않고, 도시의 풍경을 바꾸지도 않는다. 그저 SNS 속 피드와 이미지 한 장으로 몇 초간의 관심을 받다가 사라진다.

‘건축 설계공모’
대부분의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설계공모를 통해 진행되며, 신진 건축사뿐 아니라 중견 사무소들도 생존을 위해 도전한다. 설계안 하나를 제출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자원은 막대하다. 당선되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은 ‘포트폴리오’를 채우는 자료로 전락하게 된다.

요즘 많은 젊은 건축사들은 ‘지어지지 않는 건축’을 위해 밤을 새우고 있다. 현실에서는 시공 현장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창조자’가 아닌 ‘표현자’가 되어 완벽한 이미지 한 장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듯하다.

분명 설계공모는 젊은 건축사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도시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기불황 속에 이 시스템이 과열된다면, 언젠가 우리 도시는 ‘지어지지 않은 건축’들로 가득 찬 공허함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건축이 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디지털 아트’를 만드는 사람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