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보는 세상] 혼자 먹는 저녁
2025-04-22 함성호 시인
혼자 먹는 저녁
- 고두현
곰칫국
밥 말아 먹다
먼 바다 물소리 듣는데
저녁상 가득 채우는
달빛이 봉긋해라
가난한 밥상에도 바다는 찰랑대고
모자라는 그릇 자리 둥근 달이 채워 주던
그 밤의 숟가락 소리
달그락거리며 쓰다듬던
곳간의 밑바닥 소리
이제는
잔가시 골라 건넬
어머니도 없구나
- 고두현 시집 ‘달의 뒷면을 보다’ 중에서/ 민음사/ 2015년
단어(word)라는 것은 그 지시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앞 뒤 문장 요소들의 활용에 의해서 입체적이 된다. 어차피 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자의적이라면 이것은 더욱더 그러하다. 이 시에는 그런 청각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물소리, 숟가락 소리, 달그락거리는 밑바닥 긁히는 소리, 가난의 소리들이 저녁상, 곳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과 어울려 가난의 오케스트레이션을 이룬다. 어찌 보면 흔한 말들이 그 지시대상을 넘어 청각적 시간과 공간을 직조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