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유산수리기술자(실측설계) 이석범 건축사 “국가유산 핵심가치 보전하는 일…역사·구조·재료·기법까지 되살립니다”

광화문과 월대 복원부터 덕수궁 돈덕전 재건, 홍련봉 보루 보호시설까지 기록에 더해 보존의 방향 설계에 담는 일이 실측 설계 본질 전통 기법과 현대 기술 함께 이해하는 설계자 역할 중요해

2025-04-08     장영호 기자
이석범 건축사·국가유산수리기술자(실측설계) (사진=주.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역사의 결을 따라 유산의 가치를 읽어내고, 그에 걸맞는 설계를 더하는 일. 실측설계는 옛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을 넘어, 시간 속에 스며든 구조와 흔적, 기능과 의미를 하나씩 짚어가며 현재에 다시 놓는 과정이다.

광화문과 월대 복원, 아차산 홍련봉 보루 보호시설, 덕수궁 돈덕전 재건까지. 다양한 시대의 국가유산을 설계해 온 이석범 건축사(.금성 종합건축사사무소)는 유산마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엮어내는 데 집중해 왔다. 현장에 남겨진 조각들을 단서 삼아, 역사적 맥락과 당시의 건축 기법, 구조적 안정성까지 함께 살피는 그의 설계는 과거의 형태를 되살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유산이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설계 안에 보존의 방향을 쌓아가는 일이다.


Q. 국가유산수리기술자로서 실측설계를 수행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이나 접근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국가유산수리기술자 중 실측설계기술자는 국가유산의 현황을 실측 조사하고, 이를 수리하거나 복원 또는 정비하는 설계를 수행하는 건축사입니다. 실측설계를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상 국가유산의 핵심 가치를 찾는 일입니다. 유산의 물리적 현황뿐만 아니라, 처음 건립됐을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중건 및 수리 과정, 기능, 역할 등에 대한 조사를 기반으로 합니다.

특히, 목조 건축물을 지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수리가 필요합니다. 유산을 수리하게 될 경우에는 문제점과 원인을 파악하고, 수리 방안을 검토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건립 당시의 배경과 역사, 수리 흔적, 건축 기법, 재료 등을 포함한 해당 국가유산의 가치를 찾고, 그 가치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국가지정 사적). 이전됐던 광화문을 원래 자리로 복원하고, 일제강점기에 훼철된 월대를 복원하며 주변 역사광장을 정비하는 설계를 수행했다. (자료=주.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Q. 경복궁 광화문과 월대 복원 프로젝트는 역사적으로도 상징성이 큰 작업이라 생각되는데요. 설계를 맡으시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광화문은 원래의 자리에서 동측으로 이전됐다가 철거됐으며, 1970년대에 경복궁 남쪽에 콘크리트 구조로 다시 건립됐습니다. 2010년 발굴조사를 통해 본래 위치를 확인했고, 일제강점기 당시의 실측 도면을 참고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광화문 앞 월대는 전차 선로가 부설되면서 파괴됐으나, 발굴조사를 통해 전차 선로 아래에 남아 있던 유구들을 확인했습니다. 복원 설계 시 중점적으로 고려한 부분은 건립 당시의 기단, 난간석 등의 부재가 원래 위치에 설치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발굴 자료와 옛 사진을 활용한 투시도 기법 등을 통해 복원의 진정성을 높였습니다.

아차산 홍련봉보루 유적 보호시설(국가지정 사적).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홍련봉보루 중 제2보루에서 발굴된 유구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보호각 및 전시 공간)을 설계했다. (자료=주.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Q. 옛 제일은행 본점 리모델링이나 아차산 홍련봉보루 보호시설 설계처럼, 근대유산과 고대 유산을 설계할 때 접근 방식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근대유산은 건립된 이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일부가 변경되거나, 활용을 위한 시설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시대적인 변화를 담고 있는 근대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반드시 보존돼야 할 부분을 유지하면서, 구조적 안전성과 법적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합니다.

고대 유산은 오랜 세월 동안 지하에 매몰돼 있다가 발굴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합니다. 발굴된 유구는 당시 시설의 일부만 남아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모습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홍련봉 보루 유구는 전체를 노출해 관람객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보호시설을 설계했습니다. 보호시설은 역사문화경관 및 주변 환경도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목구조를 사용해 친환경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으며, 관람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지붕은 최대한 낮아 보이도록 했습니다.

홍련봉 보루는 고구려의 관방 유적으로, 발굴 결과 성벽과 집터, 저장시설 유구 등이 확인됐습니다. 가상 복원을 통해 실제 유구와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덕수궁 돈덕전. 고증 자료를 바탕으로 돈덕전을 재건해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회복하는 설계를 수행했다. (자료=주.금성종합건축사사무소)

Q. ‘대한제국의 복원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덕수궁 돈덕전 재건 프로젝트에서 고증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셨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돈덕전은 복원에 필요한 고증자료가 부족해 복원이 아닌 재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간가도와 옛 사진만으로는 실내 장식이나 구조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다만, 발굴된 유구에서 장식 벽돌과 타일 조각, 몰딩 파편 등이 발견돼 설계에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이에 더해, 동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의 구조와 마감재, 문양 장식 등을 참고하고, 근대건축 및 근대 역사 전문가들의 고증과 자문을 받아 설계를 완성했습니다.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는 점을 고려해 건축법, 소방법, 장애인법 등 관련 법적 기준도 충실히 반영했습니다. 구조적으로는 철골과 조적 구조를 병행해 내진 설계를 적용했고, 발굴된 유구를 보존하기 위해 마이크로파일 공법을 사용해 기초 구조를 해결했습니다. 특히, 발굴 당시 확인된 지하 유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하되, 관람객이 1층 바닥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Q. 국가유산 보존 설계 일을 하시면서 느끼신 제도나 현장 실무의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또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해나가는 데 있어 바라는 점이나 남기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국가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유산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보존 방법에 대한 전문 지식, 그리고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는 끈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경우에 따라 자문과 심의, 법적 제한 등의 절차가 과도하게 많아 설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도 있습니다.

국가유산은 저마다 고유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유산의 핵심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는 그 유산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의 상태, 전통 기법이나 남겨진 흔적 등을 세심하게 조사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전통 기법뿐 아니라 현대의 첨단 공법을 융합한 창의적인 접근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저 또한 오랜 시간 현대 건축 설계와 감리 업무를 병행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쌓은 현대적 공법이나 디자인에 대한 경험이 역사문화경관과 유산의 가치를 유지한 채 수리·복원·정비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국가유산의 보존을 위해 더욱 많은 건축사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젊은 건축사 여러분도 우리 전통건축을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국가유산 실측 설계에 꼭 한 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