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미움받을 용기
사무소 개업 후 첫해에는 거의 도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더는 직원이 아닌 입장에서 시작하다 보니 생각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인허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0%에 수렴했고, 프로젝트를 수주할 능력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 그래도 흔히 말하는 “개업운” 이란 것이 있던 것인지, 이듬해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당연히 일의 흐름은 매끄럽지 않았고, 계속되는 보완요청에 시달려야만 했다. 우여곡절 속 첫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다. 그 경험을 하고 나니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그 자신감이란 달콤한 열매 속에는 오만이란 이름의 씨앗이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었다.
필자를 조금씩 좀먹는 녀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창 자아도취에 흠뻑 빠져 일하고 있을 때, 문제가 된 일이 하나 있었다. 프로젝트가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끝나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해 건축주 분은 나의 역량과 자질에 대해 깊은 의심을 하셨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나에 대한 쓴소리는 멈추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분노했다. 자존심이 상했고, 그 일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진정되자 분노로 느껴진 마음은 어느새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었다. 이후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절대 나서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지만 조금씩 바꿔야 했다. 애써 찾아오신 분을 개인적인 이유로 마다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현재는 그 일이 미지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시간을 들여 최대한 차질이 없도록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이 썩 편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과정이 없으면 변화는커녕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는 것과 다를 게 없으므로, 불편한 상황이 있다 할지라도 용기 내어할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건축사로서의 나의 역할이 조금 더 분명해지는 느낌이었고, 한동안 새가슴으로 살아온 필자를 변화시켰다. 앞으로도 조금씩, 그 용기를 내볼 생각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아실현에도 가까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했던가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모두에게 닥치는 어려움과 시련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새내기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필자의 생각이 다소 주제넘는 이야기 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앞으로 새롭게 시작할 건축사분들께 조금은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미움받을 두려움보다,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