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마을 풍경

2013-10-16     노춘희 미소지앤성형외과 기획팀장

몇 년 전 간호사로서 오래 다니던 대학병원을 퇴직하고 성형외과의 상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순간순간 죽음과 맞서 싸우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학병원에서만 20여 년 일하던 내가, 주름 하나 잡티 하나에 죽고 싶기도 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상담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 망설임이 컸다. 더구나 병원이 있는 곳은 강남도 아니고 비교적 생활이 어렵다는 강북 후미진 곳인데 그런 곳에서 성형을 하는 사람들은 신체도 정신도 사치스러운 사람들일 거라는 선입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6년이 지나간 지금 나는 성형에 대한 생각이 아주 많이 달라졌다. 내가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젊음에 대한 욕심으로 온 사람이나;, 주름 하나에 목숨 거는 사람들보다 생계를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동네 성형상담을 하러 오는 고객을 분석해 보면 50대에서 60대가 대부분이고, 70대도 있다. 물론 흘러가는 세월이 덧없고, 그 동안 일만하고 살아 온 날들이 억울해 회춘을 꿈꾸며 오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취업을 위해서 오신다. 오셔서 하는 말씀도 비슷하다.

“아직은 내가 돈을 좀 더 벌어야 하는 형편인데 이놈의 직장이 나이를 주민등록증 나이로 보는 게 아니고 얼굴로 나이를 보는 거야. 나 취직 좀 하게 젊어 보이게 해줄 수는 없나?”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애처롭기 까지 하다.

그렇게 간절히 해야만 하는 일이란 대부분 식당주방일, 건물 청소, 아파트 경비, 간병인, 주차관리, 마트 판매원 등이다. 이런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다 나타난다.

수십 가닥의 슬픔이 주름이라는 이름으로 얼굴 한편에 몰려 있고, 눈꺼풀은 닫혀져서 바깥 세상 쳐다보기를 피하는 듯 하고, 하루 수십 개피 빨아댄 담배의 흔적은 입술 위에서 빨래판처럼 쪼글거리며 뭉쳐있고, 양미간은 내천(川)자를 그리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묵묵히 표현하고 있다.

성형은 마술이 아닌 과학이므로 사실 이런 얼굴을 젊어지거나 아름다워지게 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우리 몸에 축적된 세월의 흔적을 지워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나로서는 가슴이 답답하다. 이렇게 성형이라도 해야 어려운 취업문을 두드릴 자신감이 생길 것 같은 상담자의 경제활동에 최선을 다해 힘을 실어 주기 위해 상담내용을 수술할 의사에게 열심히 또 절절하게 전달한다.

성형상담을 하고 나서 세상을 쳐다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다.

어느 날 백화점에서 갔는데 어떤 고객이 건강식품을 수십 개 사들고 뭘 그리 따지는지 직원이 땀을 빼고 있었다.

고객은 물건의 지나지도 않은 유효날짜를 보면서 뭐라고 따지고 있었는데 대응하는 직원의 눈을 보니 얼만 전 쌍수(쌍꺼풀수술을 요즘에는 이렇게 줄여서 부름)를 한 듯 보였고 그 심통스럽게 생긴 아줌마 고객보다 나이도 몇 살 많아 보였다. 어느새 나의 소심한 정의감이 발동해서 한마디 거든다. “유효기간 아직 남았네요. 뒤에 밀리니까 빨리 계산 좀 해주세요” 그러나 그 고객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여기 책임자가 누구야?” 하며 앙칼지게 묻는다. 소심한 나는 속으로 “아, 괜히 참견했어, 가만히 있을걸···”하고 후회하며 저 고객의 말투나 눈빛을 성형으로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속으로 그 고객에게 울부짖는다 '저 아줌마직원은 여기 취직하려고 돈 많이 쓰고 쌍수까지 했거든요. 그러니까 좀 작작 따지라고요. 왜 아랫사람 대하듯 야단을 치냐고요. 좀 더 가진 사람이 좀 더 손해를 보고 살아도 괜찮다고요' 라고.

이젠 난 상담실 문을 들어오는 이들의 겉모습이나 첫마디만 들어도 어떤 이유로 왔는지 아는 경지에 이르렀다.

“성형은 강남에서 해야 하는게 아닌가?” 이러는 사람은 상담자인 나도 제발 강남으로 가셨으면 바라는, 잘난 척을 위해 성형을 하는 형이다.

“성형수술비는 보험이 안돼서 비싸지?” 하시는 분은 취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성형외과 문을 두드린 생계형이다.

“저··· 제가 점을 봤는데요···” 라는 말로 시작하는 사람은 상담할 때 간단히 맞장구만 쳐주면 점쟁이가 하라는 수술을 꼭 하고야 마는 형이다. 주로 재물과 관련된 점괘를 듣고 온 경우가 많다.

“인상을 바꾸고 싶어서 왔어요.” 이런 사람은 최근 이별을 겪었거나 어려운 일이 있었던 분으로 사나워 보이는 인상이 많고 가장 어려운 형이다. 성형은 외모는 고칠 수 있지만 인상은 못 고친다. 가능한 마음을 풀어서 돌려 보내는 것이 좋다.

“딱 보기에 전 어디를 좀 고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묻는 사람은 대개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온 사람이다. 지금 그대로도 예쁘다고 치켜세워서 그냥 보내면 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자기 얼굴 망쳐서 죽고 싶다고 할 타입이다.

며칠 전 아파트 입구를 나서다 재활용장에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아줌마를 보았다. 몇 달 전 취직을 해야 한다며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하셨던 분이다. 다행히 일자리를 얻으셨나 보다. 수술 전보다 많이 젊어 보이시는 것에 감사하고, 또 직업을 얻으셨다는 것에 감사하며 먼 발치에서 흘끔흘끔 쳐다보며 눈을 떼지 못하며 걸었다. 잘 자란 잔디를 밟는 기분이 들었다. 등에 얹혀있던 삶의 무게가 풍선처럼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