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답사수첩] 원림(園林)의 으뜸, 소쇄원(瀟灑園)
정원(庭園, garden)은 일반적으로 실외에 식물 등 자연을 이용해 조성된 공간이다. 서양의 정원은 대개 식물을 중심으로 구성되나, 공원이나 동물원, 식물원도 일종의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적 의미에서 정원은 일정하게 구획된 빈 땅에 약간의 화초류나 유실수를 심고 채원을 만들어 여유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서민들의 바람에서 출발한 장소지만, 정원은 서구적 의미에서 대개 주택의 외부공간을 실용적·심미적 목적으로 처리한 뜰을 뜻한다.
소쇄원의 역사
소쇄원은 조선 중기의 선비 양산보(梁山甫)가 지은 한국 전통의 별서정원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지곡리에 있다. 본래 은둔을 위해 지은 건물이지만, 워낙 풍경이 좋은 곳이라 수많은 문인이 이곳을 찾았고 문학과 학문연구의 산실이 되었다. 김인후, 정철, 송순 이외에도 의병장으로 유명한 제봉 고경명,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한 사람으로 유명한 유학자 기대승 등도 소쇄원을 찾아와서 양산보와 교분을 나누고 시를 지었다고 한다.
양산보는 임종 직전에 ‘어느 언덕이나 골짜기를 막론하고 나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 동산을 남에게 팔거나 양도하지 말고 어리석은 후손에게 물려주지 말 것이며, 후손 어느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 하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양산보의 후손들은 그의 유언을 철저하게 따라서 소쇄원을 지켜왔다.
당시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다시 복원, 중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있다. 소쇄원은 조선 중기에 호남의 사림문화를 이끈 인물의 교류처 역할을 하였다. 면앙 송순, 석천 임억령, 하서 김인후, 사촌 김윤제, 제봉 고경명, 송강 정철 등이 드나들면서 정치, 학문, 사상 등을 논하던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
조선 최고의 원림(園林)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원림 문화가 발달하였는데 원림의 중심은 누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어디를 가든지 곳곳에 누정이 있다. 몇백 년 전의 누각과 정자로부터 근대의 것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이름난 누정의 수가 885개나 될 정도이고 그중의 반이 영남과 호남에 퍼져 있었다. 영호남 지방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따뜻한 남쪽에서 더욱 발달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소쇄원은 한국 민간 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 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정원이 일반적으로 도심 속의 주택에서 인위적인 조경작업을 통하여 동산[園]의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라면 원림은 교외(옛날에는 성 밖)에서 동산(園)과 숲의 자연 상태를 그대로 조경으로 삼으면서 적절한 위치에 집과 정자를 배치하였다. 양산보 호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 ‘소쇄’라는 이름은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3)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지었다는 사실이 2021년 밝혀졌다.
소쇄원은 지금은 1905년에 소실된 창암촌 본가의 후원으로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하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쇄원은 내원을 말한다. 그 외 창암촌과 소쇄원 사이 황금정 행정의 건물이 있었고 외부에는 방암촌, 관덕재, 죽림재 등의 건물이 존재했었다.
소쇄원의 주요한 조경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오동, 배롱, 산사나무, 측백, 치자, 살구, 산수유, 황매화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흘러내리는 폭포, 걸상 모양의 탑암(榻岩)과 책상 바위 상암(床岩), 홈을 판 고목(刳木)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연못인 상하지(上下池)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애양단(愛陽壇), 계곡을 건너지르는 외 나무다리 약작(略彴), 경사지에 적절히 단을 쌓아 꽃과 나무를 심고 담장으로 내부공간을 아우르고 감싸는 조화로운 곳이다.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엿보이는 아름다운 원림으로, 조선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원림이다.
1983년 7월 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 5월 명승 제40호로 변경되었으며 양산보의 아버지 양사원이 1506년 지석동으로 입항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후손들이 떠나지 않고 실제 거주하며 관리하는 살아 있는 정원으로, 현재 양산보의 15대손 양재혁과 그의 어머니 심효경씨가 정원의 가치를 지켜가고 있다.
출처 : 나무위키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새원길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