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건축인의 공동성을 강조하고 지키는 건축계의 어른을 바란다
요즘 건축업계가 정말 힘든 상황이다.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겹쳐 건축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공모 경쟁은 과열되고, 수익성은 점점 낮아지면서 많은 건축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예 건축업을 지속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 우리 건축사는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만들고 사회에 공공 자산을 남기는 전문가라는 점이다. 건축이 경제 논리에만 휘둘리지 않도록, 양심과 책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인의 공동 가치를 지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건축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모든 건축사가 적절한 수준의 설계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설계비를 낮추는 경쟁이 계속되면 건축사들의 수익도 줄어들고, 결국 모두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연간 1,000개의 건물이 지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건물 당 설계비가 1억 원이면 시장 규모가 1,000억 원이지만, 1,000만 원으로 낮추면 100억 원이다. 여기서 건축사 수를 나누면 개별 수입이 얼마나 줄어들지 예상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결국 건축 시장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설계비 기준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우리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정한 설계비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주택 설계비는 건축사가 최소한 1년 정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설계비가 너무 낮으면 디자인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할 수 없고, 이는 점차적으로 한국 건축의 경쟁력을 낮추게 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건축사들이 연간 한두 채의 주택만 설계해도 생계 유지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환경이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내고, 건축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모제도 역시 본래 취지를 살려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 건축사의 역량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예전보다 청탁이나 로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공정한 거래가 남아 있다. 특히, 제자나 전 직원이 와서 공모안을 설명하는 문화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저지른 잘못이 미래 세대가 건축을 포기하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또한, 심사위원 선정도 중요하다. 더 이상 설계를 하지 않는 분들이 심사위원으로 남아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심사는 밀도 있고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하기에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심사를 맡아야 한다.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미덕도 필요하다.
후배 건축사들의 성장을 돕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건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건축사로서의 소명의식을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단순히 강연이나 출판 같은 공식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후배들과 편하게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세대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야 후배 건축사들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실이 어렵지만, 건축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도약의 기회는 반드시 올 거라 본다. 건축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우리의 자긍심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건축사들이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를 끝까지 고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건축계에는 디자인을 잘하는 분들도, 사업을 잘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건축계를 위해 진정으로 앞장설 어른들이 필요한 때다. 눈앞의 이익만이 아니라 건축계 전체를 생각하며 행동하는 어른들이 많아질 때, 건축 문화가 성숙해지고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건축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