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관찰과 기록,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가치

2025-03-12     이창규 건축사·에이루트 건축사사무소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이창규 건축사(사진=이창규 건축사)

한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풍토를 가진 화산섬 제주는 멋진 자연이 여기저기 펼쳐진 곳이다. 조금만 나서면 바다와 숲이 있고, 육지에서 보기 힘든 나무와 꽃들이 자라나는 온난하고 습윤한 특징을 갖는다. 이는 풍토가 매우 거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람과 강한 햇살, 숨막히는 습기와 열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고려 요소이기도 하며, 육지에서는 당연하고 쉬운 기법과 디테일들을 ‘섬’이라는 특성, 또 여러 가지 이유로 구현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고,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그러나 제주를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이러한 상황들을 겪으며 살아온 제주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궈온 삶의 모습들을 꾸준하게 바라본다면, 진짜 제주 모습, 지역의 가치를 더 발견하고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개발이 우선시되고 있는 최근, 제주의 집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는 도시와 마을 이곳 저곳에 남겨져 있는 것들과 지금도 잘 쓰이고 있는 것들을 통해 제주 사람들이 제주의 풍토와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였는지를 보고자 한다. 제주 동쪽의 온평리에서는 해안 마을과 중산간 마을이 혼재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주거방식을, 원도심지도를 만들면서는 켜켜이 쌓인 삶의 모습들을, 돌창고를 조사하면서는 풍토에 대응하는 제주인의 구축방식과 미감을 읽을 수 있었다.

<여전히 유효한 가치>
건축 작업과 조사, 연구를 하며 ‘지역성은 태도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지역의 건축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태도가 담긴 것이라는 의미도 있고, 그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건축사의 태도, 해석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관찰과 기록을 통해 조냥정신(절약하는 정신)에서 우러나온 검박함, 수눌음(서로 돕는 정신)에서 시작된 공동체 문화가 제주 건축을 이루는 바탕임을 알게 되었고 이것들이 자연적, 시대적 상황들과 맞물리며 만들어낸 가치들이 여전히 지금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