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유산수리기술자(실측설계) 박남규 건축사 “실측설계는 문화유산 보존의 밑거름…대산루 실측, 숨겨진 흔적 찾기에 힘써”

실측조사로 원형과 변형 요소 파악…역사적 변화 흔적 남겨 “누정 처마 부재, 일사 조절 기능 가능성 발견은 뜻밖의 성과” “문화유산 활용과 기록 공유는 보존과 관리의 핵심입니다”

2025-02-28     장영호 기자
박남규 건축사, ㈜일진건축사사무소(사진=주.일진건축사사무소)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복원에서 실측설계는 건축물의 원형과 변형을 파악하고 수리 자료를 확보하는 중요한 단계다. 국가유산수리기술자인 박남규 건축사(.일진 건축사사무소, 경상북도건축사회)는 오랜 기간 전통 건축물 실측설계에 매진해왔다. 그는 실측설계는 도면 작성에 그치지 않고 건축물의 역사적 흔적을 찾아 기록해 후대에 전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박 건축사는 최근 상주 대산루 실측조사에서 예상치 못한 건축적 흔적과 구조적 특징을 발견했다. 대산루는 조선 후기 건축물로, 지역 유림의 모임 공간과 연회 장소로 사용됐다. 팔작지붕을 얹은 2층 목조건물로 경관 감상 공간으로도 특색을 지녔으며, 20221228일 보물 제2205호로 지정됐다. 특히 증축된 2층 누각과 자형 평면은 독창적인 공간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숨겨진 흔적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부재 기능과 공간 변화가 드러날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상주 대산루는 우복 정경세(1563∼1633)가 1602년 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누정 겸 서실로, 1778년 개축됐다.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 중심지로 사용되며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생활을 보여준다. 건물은 ‘丁’자형 평면의 팔작지붕 중층 누각으로, 강학 공간인 정사와 휴양·독서를 위한 누각이 자연석 계단과 담장으로 연결돼 있다. 출목도리 형식과 온돌 설치 등 독특한 건축 기법을 지니며, 주변 경관과 함께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사진=국가유산청)

Q. 실측조사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요소는 무엇이며, 진행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특징이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습니까?

실측조사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한 요소는 건축문화유산의 원형과 변형된 부분을 파악하고, 부재의 흔적과 역사적 변화를 찾아 오랜 세월 동안 대상물의 활용 및 수리 과정에서 발생한 변화를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문화유산의 원형을 유지하고 변천 과정을 추정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건축문화유산의 크기와 형태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선조들이 남긴 유산을 온전히 후대에 전하기 위해 현시대의 우리가 기록으로 남겨야 할 사명이기도 합니다.

누정 마루칸의 처마 부분 부재 모습(사진=주.일진건축사사무소)

조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요소 중 하나는 누정 마루칸 처마 부분의 부재였습니다. 해당 부재는 처마의 연목을 받치는 외목도리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됐으나, 실제로는 연목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대산루 상층이 서고로 사용된 점, 누마루가 조성된 사실, 종손의 전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 부재가 누마루의 일사를 조절하는 발걸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상층 누마루의 마루바닥에 의도적으로 낸 구멍의 흔적(사진=주.일진건축사사무소)

또한 상층 누마루 마루바닥에는 의도적으로 만든 구멍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대산루의 사용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흔적일 수 있어 그 기능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실측조사 과정에서 모든 요소의 의도나 용도를 명확히 밝히기는 어려웠으나, 예상치 못한 중요한 특징으로 파악됐습니다.

조선 후기 누정 건축의 독창성, ‘자형 평면서 확인

문화유산 보존의 핵심, 실측 기록과 데이터베이스화 중요


Q. 대산루가 지닌 건축적 특징과 조선 후기 누정 건축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상주 대산루의 건축적 특징은 조선 후기(18세기 초)에 증축된 2층 누각이 과감한 형태의 변화와 독창적인 공간 창출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정사는 생활 공간으로, 누정은 서고로 조성해 실용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했다. (사진=주.일진건축사사무소)

대산루는 변화 과정이 건축적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납니다. 동향의 자형 정사가 먼저 지어졌으며, 이후 남향의 누각이 증축·연결되면서 자형 평면의 건축물이 됐습니다. 정사와 누정을 연결하는 독특한 계단을 통한 공간의 상승, 부엌 지붕 가구 부재의 연결부 등에서 이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별당이나 정자 등 누정 건축은 독서, 접객, 기거 등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대산루는 이러한 기능을 명확히 구분해 정사는 생활 공간으로, 누정은 서고로 조성해 실용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누정의 하부를 높게 띄워 건물의 위계를 강조함과 동시에 지면의 습기로부터 서적을 보호했습니다. 서고 출입 동선을 통제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활용한 점도 특징입니다.

건물의 목조가구 연결없이 중간의 벽체와 지붕이 연결돼 공간을 단일 건물과 같이 공유할 수 있게 한 지붕결합(사진=주.일진건축사사무소)

누마루 뒤에는 온돌이 마련돼 있습니다. 2층 높이에 온돌을 설치한 것은 이전에 거의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시도였습니다. ‘자형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결합해 하나의 건물을 형성합니다. 그 유형은 지붕 맞댐, 지붕 결합, 가구 연결, 가구 일체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건물의 목조 가구를 연결하지 않고 중간 벽체와 지붕만 연결해 공간을 단일 건물처럼 공유하게 한 지붕 결합형 누정 건축은 드문 사례입니다.

자형 누정 건축은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 경상북도 특정 가문의 건축물에서 나타납니다. 상주 대산루는 안동 인근 한정된 지역에 집중적으로 조영된 지붕 결합형 정자의 유일한 사례로 의의가 있습니다.

조선 후기 지방의 양반들은 사대부로서의 엄격한 품격과 절제를 유지하면서도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공간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대산루는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 조선 후기 누정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Q. 이번 실측조사가 대산루의 보존과 활용 측면에서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요?

실측조사를 통한 기록은 보수와 수리 기록과 함께 해당 건축물 역사의 일부로 남습니다. 상주 대산루가 처음 지어질 당시의 도면이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 시점의 실측과 조사를 통한 기록은 다음 세대가 우리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보존·관리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실측조사를 통해 기록된 수리나 부재 변화의 흔적은 이후 수리와 관리에 참고 자료가 됩니다.

문화유산의 올바른 활용은 과거의 유산이 현재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미래 발전에 기여하는 일입니다. 이번 실측조사가 대산루의 건축적 기능과 용도를 설명하는 학술 자료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대산루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과정은 문화유산에 대한 대중의 친밀감을 높이며, 지역 문화유산을 활용한 교육과 행사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Q.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건축사로서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향후 필요한 보존 방향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국가유산청을 비롯한 정부, 지방자치단체, 관련 재단, 연구원, 시공, 감리, 실측설계 등 다양한 분야가 협력하고 있습니다.

실측설계 분야를 담당하는 건축사로서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실측 기록물과 도면, 수리 이력 등 제반 자료의 데이터베이스화와 자료 공유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지난해 개정된 문화유산법과 수리법에 반영됐으며, 중앙 및 지방정부에서 활발히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과거 사업의 도면, 사진, 수리 이력 등이 체계적으로 축적·공유돼 다음에도 쉽게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문화유산의 활용을 통한 보존에도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에 생명력이 없듯, 선조들의 문화유산도 지속 활용될 때 관리와 보존에 더욱 힘쓰게 되며, 유산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문화유산 이용과 관련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며, 관련 기관 간 협업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를 위한 국제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각국의 문화유산은 지역의 기후와 문화 등 특색을 반영해 차이가 뚜렷하지만, 보존과 관리라는 주제 아래에서는 유사한 고민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국제 교류는 우리의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며, 관광자원으로의 활용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전통 건축물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우리나라의 경험 공유는 개발도상국 등 다른 국가에도 유용한 참고 자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