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 시대의 국가건축정책은 건설에서 문화로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 태동기에 인류 사회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가 시민권자로 활동했던 프랑스는 1977년 유럽에서는 최초로 건축법 제1조에 다음과 같이 명문화했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정조성, 건물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 경관, 도시 환경 및 건축 유산의 존중은 공공적 관심사라고.
이후 프랑스는 1995년 건설부 소속이던 건축부를 문화부로 개편했고, 현재까지 건축문화유산부(Direction générale des patrimoines et de l'architecture, DGPA)에서 건축법을 관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과감한 조직 개편으로 건축이 국가의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교육하고 고취시키는 세 가지 정책인 교육 개혁, 센터 설립, 직능 개혁 등의 추진이 가능해졌다.
반면, 대한민국 건축법과 건축 정책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17년이 지난 1962년에야 건축법을 제정했다. 당시 제정된 건축법은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근간으로 삼았기에 총독부령의 법 체계와 조항이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후 60여 년 동안 150여 회 이상 건축법이 개정됐음에도 그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다.
더욱이 조선총독부의 토건 국가식 개발 중심 건축 정책이 아직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허가권을 가진 관료들의 자의적인 법 운용을 통한 뿌리 깊은 관료 사회의 고질적인 갑질 관행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건축 행정으로 인해 건축의 예술적 가치와 품격보다 정량적 규제에 치중되고, 고양되는 사회의 문화적 갈망에 부응하지 못한 채 경직되고 말았다. 그 결과, 창작 일선에서 활발해야 할 창조적인 건축 의지는 꺾이고, 해가 거듭될 수록 건축계를 혼탁한 비문화적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대한민국은 경제, 군사, 스포츠뿐만 아니라 여타 분야에서도 한류 열풍을 일으키며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해 세계적으로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건축 분야는 일반적인 사회 인식이 부동산 경제 가치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했고, 평생 건축을 문화예술로 인식하며 작업한 김중업 선생님이 떠나신 지도 벌써 37년이나 지났건만, 건설에 종속된 우리나라 건축의 현실은 아직도 참담해 건축문화 선진국으로 가야 할 길은 요원한 듯하다.
그러나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국내외 정치 상황의 급변, 다극 체제로 재편되는 국제 질서, 교통 및 정보통신 수단 등 삶의 기반인 인프라와 문화를 창출하는 패러다임이 첨단 미디어와 AI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등으로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 역사의 대전환 시대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은 변함없이 한 시대의 문화 상징이자 척도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을사년 새해를 맞아 새롭게 나아갈 대한민국은 당면한 과제인 초고령 사회, 인구 절벽 시대, 복지문화 사회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세계 문화를 지속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과 정책도 함께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건축은 전 분야에 걸쳐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새 시대의 국가 건축 정책은 이제 ‘건설에서 문화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건축 자산이 인류의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세계 문화를 선도할 수 있도록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산업의 결집체이자 모든 문화의 총화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건축을 문화의 개념으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까지 고수해 온 개발 위주의 토건 국가식 건축 정책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 건축 자산을 문화 자산으로 품격을 제고하는 정책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그에 따라 정부 조직 개편과 법 제정도 함께 적극적으로 정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대전환의 시대, 제4차 지식산업 시대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건축 문화가 창조적으로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관련 전문 단체들이 모두 지혜를 모아 총력을 기울여 주기를 두 손 모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