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삶] 변방의 건축사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투시는 날이면 항상 “내가 열여덟에 시집와서 집한칸 없이 셋방 사는 게 다 누구 때문인데...”라는 말을 들었다. 늦둥이였던 나는 이 말을 자의식이 생기면서부터 듣기 시작해 어머니가 아버지와 아름다운 별거를 선언했던 그날까지 들어야 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집이 아니었지만, 한창 사춘기였던 난 그렇게 다투시는 날은 방 한 켠 구석에서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문득 아무런 근거 없이 그저 건축과에 진학하면 집이 생길 거라는 알 수 없는 믿음을 만들었다.
그다지 즐겁지 않은 사춘기를 벗어나 대학 건축과에 진학하고 지방출신으로 그럴듯한 메이저 사무소에 취업했건만 현실은 콘셉트나 논리 따위는 없이 오직 디자인 카피와 조합, 경제 논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제논리는 나에게도 투영되어 아담한 월급으로 방세내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허망한 생활이 이어졌다. 지갑사정도 그렇거니와 나의 삶은 그토록 상상했던 상황과는 매우 거리가 멀어 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건축인의 삶은 흔히 말하는 사(士) 자 분류까진 아닐지라도 전문가로서 대우받고 존경받는 직업인으로서의 삶이었다. 알 수 없는 믿음에 건축설계로 진로를 정하였지만 집은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고, 설계 없는 인허가나 서울 건축사의 지방업무 하청을 요구받는 것이 일상이다. 물론 난 절대로 하지도 않고 소개도 없다. 대학시절 경외하던 스타건축사와 같이 우아한 삶은커녕 그저 먹고살기 바쁜 처절한 소상공인일 뿐이다.
반면에 TV에는 유학으로 외국에서 수년을 살다가 몇몇 설계와 방송의 힘으로 플래시가 터지고 추앙받는 삶을 살고 있는 건축사도 존재한다. 과연 그럴만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그게 내가 선망하던 건축인으로서의 삶이었던 것 같은데 부럽기도 하지만 현실을 살고 있는 나는 부정적인 생각부터 든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주변 건축사들은 건축사 자격을 획득하면 모두 새로운 상위 리그에서 살 수 있을 거란 나이브한 착각을 한다.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도 않고, 아니 어쩌면 “애초에 가지고 태어난 삶” 그것이 공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리그에서는 예의 없는 공무원의 갑질에도 허리를 숙이고 제대한 지 십 수년이 지났음에도 군부대현장에서는 무례한 담당자 앞에 이등병이 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이렇게 부정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건축 분야에서는 공공건축가 제도가 생겨 입지를 넓히고 있고, 건축설계의 사회적 인지도 또한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 머지않아 사회 속에서 뚜렷한 역할을 담당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이 역시 특정단체나 동일대학 출신의 카르텔 네트워크가 아닌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건축사협회 개개인 모두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 주어지고 존중받는 그런 건축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한다.